[세트] 황금종이 1~2 세트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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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돈의 위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실감은 바로 '지배의 통쾌함'이기도 했다.

그렇다, 지배의 통쾌함. 그 기분은 참 야릇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뭐라고 꼭 찍어서 말할 수 없는 그 기분은 떳떳함이고, 뻐근함이고, 당당함이고, 승리감이고......,

참 여러 가지 기분이 뒤엉키는 것이었다. 

 

 

금종이를 보는 순간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아마 상당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바로 한 글자. "돈"일 것이다.

내게는 태백산맥의 작가로 인식되는 조정래 작가의 신작.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사회의 민낯을 냉철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인지라 너무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황금종이 전에 내가 읽은 작품은 천년의 질문이었다. 2019년에 출판된 작품이니 햇수로 4년이 되었다. 황금종이를 읽다 보니 내용이 낯설지가 않았다. 등장인물의 차이는 있지만 구체적인 주제인 "돈"이 두 작품의 공통 주제였던 탓이다. 차이라면, 황금종이는 "돈"을 매개로, "돈"과 엮어서 벌어지는 사회의 각종 문제들이 선물 보따리처럼 가득 펼쳐진다면, 천년의 질문은 돈과 연관되어 있는 권력, 정치, 힘의 구도 등이 다각도로 드러났다는 차이가 있다.

1.2권에 걸쳐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단편소설이나 연작소설로 봐도 될 정도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이태하 변호사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 열심히 데모를 하던 그는 갑작스럽게 도서관에 박혀 책만 판다. 그리고 1년 만에, 대학 재학생의 신분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한다. 그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한 이유는 선배 한지섭 때문이다. 한지섭은 태하에게 노동운동 전면에서 도움을 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돕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했다. 결국 태하는 검사가 된다. 한지섭 역시 큰 뜻을 품고 정치인이 되었지만, 과거 노동운동의 전면에 섰던 인물들이 권력을 잡은 후 변질되어가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부가 된다. 그런 태하가 지금은 변호사가 되었다. 재벌 비리와 관련된 사건을 맡게 된 태하는 드디어 자신의 소신을 지킬 기회가 왔다는 것에 내심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슬쩍하는 척만 하고 닫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태하는 소신을 밝혔고, 그날 이후로 태하는 사건에서 배제되고 한직으로 쫓겨나게 된다. 도저히 검사 세계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태하는 결국 사표를 내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 태하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사건을 들고 온다. 괘씸죄로 재벌들의 눈에 찍힌 터라, 돈이 되는 사건보다는 소소한 사건들(그것도 거의 태하를 아는 동창들이 갖다주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능력 있고 소신 있는 태하인지라, 맡은 사건들은 최선을 다해 변호했고 승소율도 높았다. 물론 그의 소신을 넘어서는 사건에는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대놓고 큰돈을 바라지는 않았도, 주는 금액은 받을만한데 태하는 참 대단하다. 그의 소신이 바로 그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책 속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사후 엄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뺏으려는 딸, 재벌 회장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이복동생이 인지 청구권과 상속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 건물주가 갑자기 월세를 4배나 올려 받으려고 하는 통에 건물에 있던 식당 사장과 건물주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 부모가 평생 모은 건물을 도박으로 날린 아들, 재벌 2세에게 성추행을 당한 로펌 여 변호사의 이야기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돈과 관련된 사건들의 총 집합소라고 볼 수 있다. 감동적인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린내 나는 추잡한 사건들이다. 특히 부모 사후 재산을 상속받는 상황에서의 일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아들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는 상황이 특히 많이 벌어지는데, 법적으로 상속재산은 자녀들 사이에서는 성별을 막론하고 균등하게 배분된다고 한다. 근데 유언장이 있는 경우는 어떠할까? 당연히 유언장이 먼저라고 생각했는데, 법적으로 소송을 걸면 균등 상속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1권에서 태하의 친구인 대기업 임원 박현규와 얽힌 이야기가 상당수 등장한다. 첫 번째 이야기 역시 박현규의 이모와 사촌 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소송에 대한 이야기고, 박현규를 통해 이태하에게 자문을 구하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런 현규가 딸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려 큰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과연 돈 앞에서 구차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도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인간의 욕심 자체가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태하의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응, 나도 돈 좋아해. 다만 노예로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흔히 말하는 ‘돈의 위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실감은 바로 ‘지배의 통쾌함‘이기도 했다.

그렇다, 지배의 통쾌함. 그 기분은 참 야릇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뭐라고 꼭 찍어서 말할 수 없는 그 기분은 떳떳함이고, 뻐근함이고, 당당함이고, 승리감이고......,

참 여러 가지 기분이 뒤엉키는 것이었다.

"응, 나도 돈 좋아해. 다만 노예로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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