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훔치는 자는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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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런 거창한 게 아니에요.

그냥 익고 재미있으면 그걸로 돼요.

재미없어도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경험이고요.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재미없다 느끼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제목부터 범상치 않았다. 책도둑을 향한 강한 경고의 말일까? 제목만 봐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맞다. 이 책은 바로 그 책도둑을 향한 저주의 말이다. 장편소설이지만, 연작소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책은 내용만큼이나 큰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책의 마을로 유명한 요무나가 마을에 사는 미쿠라 미후유. 미쿠라관을 지켜야 할 4대손이기도 한 그녀는 미쿠라라는 성과는 달리 책을 무척 싫어한다. 미쿠라관은 무엇일까? 미후유의 증조할아버지였던 미쿠라 가이치는 책 수집가이자 평론가로 본인이 소장중인 책을 모아 미쿠라관이라는 이름의 큰 도서관을 만들었다. 책이 워낙 많았던지라, 미쿠라관은 동네의 자랑이자 그로 인해 결국 책의 마을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가이치 사망 후, 미쿠라관을 맞게 된 미쿠라 다미키는 200권의 책을 도둑맞는 일이 벌어지자 미쿠라관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미쿠라가문 사람이 아닌 한, 누구도 미쿠라관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미쿠라관의 책을 훔쳐 가게 되면 무시무시한 저주가 걸려있다는 소문이 퍼진다. 바로 북커스 말이다. 북커스는 중세 시대 서적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된 저주의 말을 말하는데, 당시는 인쇄술이 발전했던 시기가 아니었던지라 책의 가치가 더 높았던 시기였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미쿠라관에도 그런 저주가 내려온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할머니 다마키가 사망한 후, 미후유의 아버지인 아유무와 고모 히루네가 미쿠라관을 지키게 되었다. 아버지 아유무는 유도 관장이었는데, 얼마 전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 고모인 히루네는 이름처럼 하루 종일 잠만 잔다. 결국 미쿠라관을 관리할 사람은 미후유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버지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늘 길에 마을 책 축제인 미나즈키 축제에 들렀다가 닭꼬치를 샀다. 사범 대리인 최지훈에게 가져다 주자, 지훈은 미쿠라관에서 경고음이 계속 울렸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도둑에 대비해 경고를 달았는데, 그 소리가 계속 들렸다는 것은 히루네가 계속 자고 있었다는 뜻이다. 결국 미후유는 닭꼬치를 들고 미쿠라관으로 간다. 역시 히루네는 자고 있었다. 근데, 히루네의 손에 뭔가 부적같이 보이는 것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 이 책을 훔치는 자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깃발에 쫓기리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소녀를 보고 깜짝 놀란 미후유. 자신을 마시로라고 소개한 아이는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이 이상해진다. 마시로의 도움을 받은 미후유는 한모마을의 형제라는 책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책 속 이야기가 실제 요무나가 마을에 펼쳐져 있는데, 빨리 범인을 잡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미후유는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책 속에는 총 4권의 도난당한 책 이야기와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미쿠라관의 숨겨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 속에 또 다른 책이 담겨있어서 그런지 더 흥미로웠다. 책 속 이야기가 마을에서 펼쳐지기에, 마을 주민들이 책의 등장인물로 분한다. 가령 첫 번째 한모마을의 형제 이야기의 주인공인 베이젤은 지훈이, 베이젤과 결혼하게 되는 하우리는 지훈이 짝사랑하는 하라다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주민들이 점점 여우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없다. 빠르게 범인을 찾아서 책을 돌려받아야 한다.

책의 소제목은 책이 도난당했을 때 일어나는 상황인데, 흥미로운 것은 도둑맞은 책의 장르가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은빛 짐승, 리키 매클로이 등 판타지와 탐정물, 전래동화 등과 같이 말이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책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 역시 저자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마을 주민 누가 어떤 역할로 등장하는지를 마주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되는 미쿠라관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또한 또 다른 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미후유의 과거와 마시로의 존재, 그리고 잠만 자는 고모 히루네의 이야기가 풀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미쿠라 집안의 미후유'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아니다.

미쿠라 집안의 삶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데, 다마키는 '미쿠라'의 사람이라는 데 계속해서 집착했다.

누구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저택을 겅ㄹ어 잠그고, 미쿠라 집안사람만의 공간으로 마들면 미후유도, 어쩌면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도, 책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될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기 없이 꽃을 키울 수는 없다.

도난당한 책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아픈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또한 또 하나의 큰 작품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은 읽힐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책도 독자에 의해 읽혀야 비로소 책이 된다. 그런 면에서 미쿠라관의 존재는 모두가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책과 가까워지기를 바랐던 가이치의 마음이 담겨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다마키는 그저 책 자체를 소유하는 데 의의를 뒀고, 그는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왔다. 다행이라면 가이치의 마음을 깨닫는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후, 미쿠라관은 어떻게 될까?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흥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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