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들어 깨닫고 삶까지 이어지는 모든 과정,
곧 성경 본문에서 삶의 상황까지 이르는 길을 말씀묵상이라고 한다.
이 길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같은 뜻인데 언제나 삶의 헌신과 변화까지를 포함한다.
성경은 예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구약은 앞으로 올 메시아 예수에, 신약은 예언대로 온 메시아 예수와 그의 공생애, 죽음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성경을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하면 창조와 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타락이라는 단어가 껴있다.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인간을 향한 구원이 바로 성경이다. 그리고 예수는 창조 이전부터 창조자인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된 "말씀"이 바로 예수를 가리킨다.
신약의 사람들에는 구약의 사람들과 달리 등장인물들이 많지 않다. 신약의 초점은 지극히 "예수" 즉, 말씀이다. 예수를 중심으로, 그의 말씀과 그의 행적과, 그의 모든 것을 중심으로 그와 함께 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중 첫 기록이라 할 수 있는 마가복음의 저자이자 바나바의 조카, 바울과 전도여행에서 중도 포기한 그 마가가 첫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세례요한과 마리아, 요셉도 등장한다. 예수의 제자들, 예수를 반대했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예수의 부활을 믿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 바울과 베드로 등 예수를 중심에 두고 그의 행적에 따라 타인들로 곁가지가 뻗어나간다.
성경이 익숙한 기독교인 입장에서 읽기에도 좋지만, 성경 속 구절에 대한 설명과 함께 구체적인 구절이 같이 등장하기에, 성경이 낯선 일반인들이 읽어도 어려움이 없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목사다. 그렇기에 다분히 복음(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다.)에 방점을 둔 상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신약의 사람들을 한 줄로 요약하면 무엇일까? 각 장이 진행됨에 따라 더 선명한 요점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강한 권면이자 명령이라 할 수 있다. 예수를 닮아 말씀이 체화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아프고 찔린다. 세 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를 놓고 볼 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종교는 개신교라고 한다. 그럼에도 개신교는 개독교라는 악명을 받고 있다. 왜일까? 기독교인 한사람 한 사람이 예수의 삶이 자신의 모습 가운데 펼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논조를 제시한다.
예수의 지상명령이 이뤄지려면,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말씀묵상을 하면서
그의 인격과 일상에서 말씀이 삶이 되어야 한다.
개인과 가정이 변하고 그 힘이 사회와 역사를 변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일이 세상 끝 날까지 이어져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에는 세 가지가 포함된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정직하게 살피고 자백해야 한다. 둘째, 내가 저지른 죄 때문에 피해를 보거나 상처 입은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피해를 구체적으로 갚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돌이켜 살아야 한다. 매주 예배시간에 기독교인은 내가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한다. 하지만, 그 이후 두 번째와 세 번째 회개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 늘 똑같은 죄의 구덩이 속에서 몸을 굴리게 된다.
교회가 자신의 왕국을 세우면 안 된다. 왕국은 하나님 나라 하나뿐이며 왕은 오직 하나님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순례 공동체다...
교회 공동체든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의 어떤 지도자든 자신을 절대화하면 안 된다.
가장 많은 돌팔매를 맞는 것 중에 하나가 세습과 교만이 아닐까 싶다. 성경 속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뿐 아니라 제자들을 향해서도 예수가 쓴소리를 내뱉은 것 역시 그와 관련이 있다. 남들보다 자신이 우쭐하고 싶어 하는 바로 그 마음이 악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마치 수능 만점자의 반복되는 대답과 비슷하다. 말씀 되신 예수의 삶을 내 삶 가운데 그대로 옮겨야 한다. 말씀묵상(말씀과 기도)를 통해 내 삶을 비춰보고 타락의 모습(죄)을 깨닫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내 삶은 다시금 바로잡아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어 사는 것. 그것이 바로 그것이 세상의 소금이며 빛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