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대로 낭만적인 - 스물여섯, 그림으로 남긴 207일의 세계여행
황찬주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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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은 꽤 많은 사람들의 로망일 것이다. 버킷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 여럿 있다. 아직은 여러 가지 형편 상 장기간의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인지라, 이렇게나마 타인의 여행기를 통해 간접 여행을 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대학에 재학 중일 당시 봇물 터지듯 해외 배낭여행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배낭여행뿐 아니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통해 해외에서의 경험을 쌓는 경우도 상당했다. 물론 영어가 확 늘어서 오는 경우가 많진 않지만 적어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온 친구들은 그만큼의 견문이 넓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실내건축학과에 재학 중이던 저자가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이 아닌 휴학을 선택하고 돈을 모아 200여 일간 세계여행을 한 여행기이다. 군대에서 책을 읽으며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저자. 그 궁금증을 누군가에게 전한다. 훗날 함께 여행을 하게 된 후임 K다. 그렇게 그의 계획은 하나 둘 준비된다. 그리고 K의 전역 일주일 후, 둘은 인천공항에 서있는다. 각자의 여자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그렇게 둘의 여행은 시작된다. 우선 경비가 넉넉하지 않았기에, 무조건 싼!! 여행을 했던지라 럭셔리하거나, 편한 여행은 아니었다. 계획이 착착 세워졌던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좀 더 긴 시간을 지냈고, 여행을 하며 당일에 숙소를 찾고, 숙소 주변에서 제일 로컬처럼 보이는 저렴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인도의 타지마할, 이집트의 카이로, 그리고 볼리비아였다. 타지마할은 워낙 유명한 여행지였어서 많이 들어봤지만, 저자의 글을 보고 나도 꼭 한번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미마할이 죽은 황후를 그리며 지은 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19년간 함께 살았던 마할의 유언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뿐만 아니라 22년간 건축이 이루어졌고, 건축으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던 차에 아들에 의해 왕은 8년 동안 요새에 유폐되었단다. 사실 샤자한 황제는 타지마할 맞은편의 자신의 묘도 지으려고 했는데, 결국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는 순간 말을 잃게 만들만한 그 아름다움은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본인의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자꾸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밖에도 이집트 카이로는 저자와 K가 고생을 했던 곳이었는데, 말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던 K 덕분에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사이로 앰뷸런스를 불렀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타 보지 못한 앰뷸런스를 이집트에 가서 타봤다니...! 그래도 K가 큰 부상 없이 여행을 이어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당연히 K와의 여행은 마지막까지 함께일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큰 트러블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피곤함과 성격적 부딪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결국 둘은 베네치아에서 헤어지게 된다. 원래 계획은 혼자 여행이었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조금은 흔들렸던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기억은, 그것도 타국에서의 삶은 스스로를 더 약하게 만드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근데, 그게 두렵다고 집에 갈 거야?' 물론 그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K가 예언이라도 받은 것처럼 같이 여행 가자고 말하기 전을 떠올려봐. 원래 이 여행은 혼자였어.

너는 여행을 왜 떠나고 싶었어?'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호기심. 그것은 유리알같이 단단한 호기심이었다.

'그럼, 여행을 하면서 너는 무엇을 하려고 했어?'

나는 세상을 내 발로 걷고, 내 눈으로 보고, 그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저자는 다시 혼자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또 예정에 없는 동아리 후배 Y가 그의 여정에 동행한다. 그러고 보면 저자는 참 잘 살았나 보다 싶었다. 타인과의 여행은 정말 쉽지 않다. 가족도, 베프도 함께 하는 게 쉽지 않은 게 여행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선뜻 (권유하지도 않았음에도) 여행을 함께 하겠다고 이야긴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텐데... 그런 면에서 저자는 성격이 좋았던 걸로!

볼리비아 대사관은 정말 좀 그랬다. 그놈의 비자 때문에 4일이나 묶여있어야 했다니, 하루하루 체류비용이 나가는 것인데 그런 탁상행정이 그곳에도 있다니 놀랍다. 아니 오히려 외국인에게는 이미지 관리상 더 친절하게 해주지 않나? 덕분에 볼리비아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까?(저자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느끼겠지...)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된다는 말이 저자에게도 통용되었던 것 같다. 때론 이성적인 관심을 이어간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이기에, 그리고 젊었기에 그런 것일 테지만 말이다. 책의 시작과 끝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는데, 책의 말미에 그 내용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되는대로, 그럼에도 낭만적인 세계여행기에 저자가 직접 플러스펜으로 그린 그림이 더해져서 더 특별하고 신선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두렵다고 집에 갈 거야?‘ 물론 그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K가 예언이라도 받은 것처럼 같이 여행 가자고 말하기 전을 떠올려봐. 원래 이 여행은 혼자였어.

너는 여행을 왜 떠나고 싶었어?‘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호기심. 그것은 유리알같이 단단한 호기심이었다.

‘그럼, 여행을 하면서 너는 무엇을 하려고 했어?‘

나는 세상을 내 발로 걷고, 내 눈으로 보고, 그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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