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아씨전 안전가옥 오리지널 29
박에스더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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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괜찮냐는 겁니다. 그 뒤틀린 운명을 그대가 가지고 싶어서 가진 것도 아니잖습니까.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화살을 마음에 두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건 그대의 몫이고요.

나는 그런 그대가...... 왜 이리 안타까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컬트가 섞인 작품을 잘 읽지 않는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작품이었는데, 그럼에도 벽사아씨전이라는 제목과 표지를 보는 순간, 오컬트 보다 조선시대라는 배경에 더 눈이 갔기 때문이다. 읽고 나서 보니 '영상화하면 정말 대작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벽사가 무엇인 지 알아야 할 것 같다. 벽사는 삿된 것. 즉, 귀신을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좀 익숙한 단어로 바꾸자면 퇴마가 될 듯하다. 서문빈은 서문가의 딸로 벽사가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귀에 들렸기에 가족들과 종들조차 그녀와 함께하는 것을 꺼려 했고 그녀는 홀로 별채에서 지낸다. 그리고 별채 앞에는 금줄이 달려 있었다. 그런 빈에게는 어려서부터 정혼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현은호. 빈의 이런 상황에도 은호는 늘 빈의 곁을 지켰다. 동생인 서문환이 세상을 떠난 날도 그랬다. 고통스러워하는 빈을 찾아오고, 늘 마음을 담은 편지를 건넸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 은호는 더 이상 빈을 찾지 않게 된다.

시간이 흘러 벽사가로 활동하는 빈은 영의정 한길전의 별장인 사곡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벽사 자리에서 동부승지가 된 은호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은호는 빈을 기억하지 못한다. 은호의 목숨을 살린 빈은 과거 그 사건 때 도움을 받은 업신 파려를 다시 만난다. 구렁이, 유리뱀이었던 파려는 영의정 한길전의 집에 오래 머물고 있다. 한길전의 딸인 채령은 왕가로 시집을 갔는데, 사실 그의 남편 되는 휘는 왕이 되기에는 상당히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자를 비롯한 왕가의 사람들이 죽고, 다음 보위를 이을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게 된다. 결국 이휘는 왕이 되고, 그의 아내였던 채령은 중전이 된다. 채령과의 사이에서 왕자가 태어나지만, 휘는 아들을 세자로 올리지 않는다. 채령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를 세자로 삼게 된다면, 3대의 왕을 섬기며 정치구단이자 막강한 권력자 한길전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벽사의 일로 다시 만나게 되는 파려와 빈. 108번의 귀혼구를 모으면 다시 평범한 여자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에 빈은 파려와 함께 귀를 잡기로 한다. 파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빈은 파려가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에게 파려라는 이름을 준 그 누군가를 다시 찾아,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 하는 파려의 마음을 들은 빈은 은호를 떠올린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은호를 말이다. 두 번째 은호를 만난 자리는 연등회였다. 사내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지라, 빈을 남자로 착각한 은호.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지만, 왠지 빈이 낯설지 않다.

한편,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채령은 업신이자 어려서부터 자신을 키웠던 파려에게 조만간 열릴 풍운뢰우제에 자신의 편에서 힘을 써달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지난번 풍운뢰우제에서 삿된 것들이 출몰하여 임금 휘가 큰 어려움을 겪었던 사실을 아는 은호와 관상감 직장인 박진우는 벽사가들을 찾지만, 상당수가 영의정 한길전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그때, 은호는 빈을 떠올리게 되고 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풍운뢰우제 당일에 큰 사건이 벌어지는데...

오컬트 안에 시대상은 물론 로맨스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가 모두 담겨있어서 흥미로웠다. 예상치 못한 반전 같은 상황 속에서 가슴이 아팠다. 지금이나 그때나 권력 앞에서 악마가 되어가는 인물들의 모습과 사람 취급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한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귀로 등장했을 때는 답답하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를 깨달은 인물들과 어떤 선택도 완벽하게 만족할 수 없는 상황들이 속이 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적절한 스토리 전개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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