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배 페스카마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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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이 표제작인 욕망의 배 페스카마다. 페스카마라는 이름이 낯설었는데, 이 작품을 실제 있었던 사건(페스카마 15호)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실제 사건을 찾아보니, 작품 속 이야기와 상당 부분 닮아있었다. 책 속 인권단체 한누리의 최만복 간사로부터 사건을 의뢰받고 범인이었던 조선족들을 변호한 인물이 김형섭으로 그려졌는데, 실제 변호인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책 속 이야기처럼 주범으로 몰렸던 1명을 제외하고는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해졌다고 한다.

각 작품은 각기 자신만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데, 읽는 내내 연작소설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등장인물도, 상황도 다르지만 앞 전의 작품 속에서 등장한 인물들과 뭔가 비슷한 연결고리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백수가 된 아버지와 취준생 아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과거 은행에 종사했던 인물이었는데, 자금중개회사 등의 전전하게 된다. 뒤 작품에도 비슷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래서인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퉁차이라는 작품과 백소령의 여름이라는 작품이었는데, 퉁차이는 과거 내가 신혼여행 갔을 때 느꼈던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였고 백소령의 여름에는 주인공이 자전거로 전국 종주를 하는데, 우연찮게 사춘기 세 아들과 엄마가 자전거 종주를 하는 에세이를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터라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퉁차이라고 불리는 이동찬은 신혼여행지 가이드다. 나 역시 멀지 않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패키지가 아니었지만 허니문 특전으로 몇몇 유명 여행지를 관광시켜 주거나 첫날과 마지막 날 픽업과 샌딩 서비스를 받았었다. 덕분에 첫날 마지막 팀이 나오기까지 공항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몇 관광을 하는데, 우리를 담당했던 가이드(부장)가 좋은 곳 몇몇을 소개하며 약간의 압박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신혼여행 와서도 이런 걸 안 보고 가면 어떻게 하냐는 식의 이야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이미 오기 전에 다른 관광을 예약했던 터라, 나중에 상황을 안 가이드가 민망해하긴 했지만, 같은 호텔에 묵어서 친구가 된 부부는 가이드가 권한 핑크 돌고래를 보는 관광에서 돌고래를 보지 못하면 책임지라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그 관광을 갔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우리는 책 속에 나온 것처럼 패키지여행이 아니었던지라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보긴 했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굳이 픽업 서비스 때문에 공항에서 몇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허니문 온 신혼부부들을 소개하고 리베이트를 받았던 퉁차이가 나중에는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호객행위를 피하고 자유여행하는 법에 대한 정보를 유료로 제공하는 걸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백소령의 여름에는 전직 여행기자가 등장한다. 우연히 자전거 국토종주를 취재하기 위해 합류했던 여행 이후로 자전거의 참 맛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코로나와 여러 가지로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된 주인공은 아는 선배의 출판사에서 전래동화 중 한 권인 선녀와 나무꾼을 쓰기로 한다. 직업병 때문인지, 선녀와 나무꾼의 유래를 알아보던 그는 지리산으로 자전거 취재를 떠나기로 하고 길을 나서는데... 국토종주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에 등장하는데, 자전거 라이더의 복장에 관한 이야기와 이화령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실제 에세이를 읽다 보니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더 흥미로웠다. 마치 두 이야기가 연결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밖에도 표제작 역시 묵직한 여운을 담아냈다. 그중 가장 악랄하게 조선족 선원들을 괴롭혔던 갑판장 김선두는 큰 빚을 지고 있었기에 이번 항해의 어획량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처음부터 조선족 선원들이 한국인 선원들을 향해 칼을 겨눈 건 아니었다. 계속되는 폭력과 인권모독, 수면 등의 기본적 욕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데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겁을 줬기 때문에 결국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김선두가 차라리 처음부터 자신의 상황을 오픈하고 서로 도우며 항해를 해나갔다면 이런 끔찍한 결말이 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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