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둘은 이성을 바탕으로 연구되는 학문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과학적으로 규명되고 검증을 해낸 사실을 더 진실로 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내용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철학 하면 떠오르는 심오한 첫 문제 "과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좀 다른 시각으로 설명하는 책을 만났다. 바로 현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도덕에 대한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의 저서다. 사실 읽기가 쉽지 않았다. 철학은 어렵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철학 및 용어들에 대해 이해에 상당한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 (생각보다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고, 그래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기왕이면 조금 더 쉬운 단어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아쉽기도 했다.)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인간종에 대한 이야기가(상대적으로 가장 이해가 어려웠던 장이다.), 두 번째 장에는 나와 너로 구별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세 번째 장에서는 도덕적인 선택의 오류에 대한 이야기가, 네 번째 장에는 종교와 인격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앞에서 말한 과학으로 설명이 안되는 내용의 예로 웃음과 쾌락을 설명하고 있다. 웃음은 인간이라는 공동체에게 유익을 끼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 웃음은 인간만이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진짜 웃음을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쾌락의 문제는 단지 감정적으로 풀어내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가령 성적 쾌락의 경우, 그 대상에 따라 쾌락을 느끼기도 불쾌를 느끼기도 하니 말이다. 도덕적인 선택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자. 이 책을 읽기 전, 다른 책을 통해 도덕적 행동에 대한 고민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있다. 가령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보자면 내 선택에 따라 타인에게 큰 영향(생명의 문제까지)이 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특히 피터 싱어와 같은 현대 윤리철학의 주류 학자들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한다. 과연 생명의 문제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인가에 대해 저자는 냉철하게 비판을 가한다. 누군가의 생명은 중요하고, 누군가의 생명은 포기하는 게 맞는가?의 이야기 말이다. 도덕은 종교로 이어진다. 우선 이에 앞서서 나와 타인관의 관계에 대한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나를 인정하는 것처럼, 타인도 인정해야 한다. 그로부터 도덕이 등장하는 것이고, 그 도덕들이 결을 이루어 만들어진 것이 종교기 때문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토대는 바로 그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고, 도덕의 룰을 마구 흩트려 놓는 자유주의자들의 의견과 도덕적 판단들을 향해서이다.
첫 장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실타래처럼 이어진다. 하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큰 주제를 형성한다. 첫 장의 고난(?)을 이겨내면 상대적으로 뒤로 갈수록 좀 덜 부담스럽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