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한 줄에 눈이 갔다. 하녀가 총리가 되다니... 과연 이런 극적인 상황이 어떻게 펼쳐진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총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특히 자연재해처럼 스케일이 큰 작품을 좋아하는 터라 작품 속에 무슨 일이 펼쳐졌는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아팔리아의 퍼모스트저택은 총리 관저다. 총리는 프래스토시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례하고, 독단적이고 날카로운 성격을 지녔다. 2개월 내내 멈추지 않고 쏟아진 비로 아팔리아는 쑥대밭이 되었고, 수많은 이재민이 생겨났다. 하지만 자연재해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때마침 열린 회의에서 기상학자들의 메모가 도착한다. 그리고 총리는 조만간 비가 그친다는 소식을 회의에 모인 사람들 앞에 전한다. 긍정적인 소식에 모두 희망을 가지고, 이 소식은 신문에까지 대서특필된다. 근데 그날 밤, 총리는 짐을 챙겨 기차에 오른다. 남편인 티모르 필로타판타솔(티미) 대위와 하녀 글로리아 위노우, 골든 레트리버인 데이지를 데리고 말이다. 하지만 기차 승무원은 하녀와 개의 출입을 막는다. 결국 데이지와 글로리아는 기차에서 내리게 된다. 티모르는 그런 데이지를 받기 위해서 내려갔다가 기차는 출발하고 총리만 기차를 타고 떠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티모르와 글로리아, 데이지는 기상학자들의 편지를 보고 사색이 된다. 비는 앞으로도 계속 내린다는 말이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모든 일에 아귀가 맞기 시작했다. 요리사를 해고하고, 짐을 챙긴 이유는 바로 이곳을 떠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급기야 총리가 도망쳤다는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놓이자, 티모르는 비슷한 체구의 글로리아에게 총리인 척 연기를 하라고 한다. 총리의 말투를 연습하고, 여러 가지 제스처를 취해본다. 총리의 옷과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회견에 나서는 글로리아. 감기에 걸렸다는 말로 겨우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총리가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총리인 척해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끼는 글로리아. 5개의 공장 중, 숟가락을 만드는 1공장에서 일하는 친구인 히기를 찾아가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려다 결국 마음을 접는 글로리아는 공장을 순회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마주한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찾지만, 쉽지 않다. 이미 총리에 의해 재해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덮어놓고 나라를 구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는 법령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고용주들은 비로부터 기계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무급으로 펌프질을 시키고, 그 일에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자녀와 반려동물들을 보호소에 맡기는 조치를 취한다. 글로리아가 총리인 척 방문한 공장에는 해고된 요리사의 딸이 있었는데, 요리사의 간청으로 그 딸을 총리 관저로 데리고 온다. 총리의 부재를 아는 사람이 많아질까 봐 더 이상의 인원은 데리고 오지 말라는 티모르의 말에 따라 히기를 데리고 오지 못한 게 마냥 아쉬운 글로리아.
계속되는 비에 뭔가 대책을 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글로리아. 프래스토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할 상황이 불 보듯 뻔한데... 과연 이 위기를 하녀 글로리아는 극복할 수 있을까? 또한 총리에 기세에 눌려 자신의 능력은 물론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남편 티모르는 글로리아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책 속에는 글로리아의 시선뿐 아니라 클렘이라는 아이가 키우던 개 하인즈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한 어려움에 처해있고, 수해로 개들 사이에 광견병이 출몰함에 따라 사람들은 떠돌이 개에 대한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하인즈의 삶은 녹록지 않다. 과연 하인즈는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총리가 도망가는 장면을 보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왕들 몇 명이 떠올랐다. 조선시대까지 가지 않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위기 상황 속에서 자신만 쏙 빠져나가는 위정자들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할 수 있지 않은가? 타의로 시작한 총리 자리지만, 적어도 글로리아가 총리보다는 더 책임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그런 지도자 아래서 생존을 걱정하는 시민들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편, 전에 얼굴에 점을 찍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던 모 드라마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떻게 40대의 총리와 15살의 소녀를 구분할 수 없을까? 아무리 총리가 모자를 쓰고, 장갑을 꼈다고 해도 말이다. 아무리 연습을 해서 총리의 말투를 구사했다고 해도 엄연히 다른 데 말이다. 그만큼 관심이 없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감수해야 할 이야기였던 걸까? 어떤 면은 지극히 실제적이지만, 어떤 면은 또 판타지 같기도 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