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 공포증이 있다. 병원을 안 가봐서 그런 걸까 싶긴 한데, 병원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피투성이가 된 환자가 떠오른다. 그렇다고 크게 다쳐 병원에 갔던 적도 없는데 왜 그런 이미지가 굳어졌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아이를 낳은 후 소아과는 줄기차게 가서 아무렇지 않지만, 응급실은 여전히 내게는 공포스러운 곳이다. 내가 아파서, 아이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몇 번 다녀오긴 했지만 응급실만 생각해도 진땀이 난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그럼에도 의사가 쓴 에세이나 드라마를 좋아한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내 돈 내산 하는 작가에 본업이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사람이 있고, 소위 서평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읽고 나서니 말이다. 의사들의 책에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삶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을 다잡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
이 책 또한 저자가 의사다. 의사가 쓴 책은 워낙 어려운 전문용어가 많기에 읽기 쉽지 않겠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한 편의 의학드라마 같다. 인턴 딱지를 막 뗀 초보 의사인 저자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병원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 입대를 선택한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 공중보건의로 가게 된다. 무려 "섬"이었다. 섬에 갔던 기억이 많지 않아서인지 책을 통해 그가 전하는 섬에서의 생활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물론 의사 생활 자체가 드라마와는 달랐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의사도 사람이라는 것. 그 팍팍한 생활 속에서도 사랑을 할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인턴의 막바지에 대학병원에서 만난 스크럽 간호사 J는 저자가 들어간 수술방의 초자 간호사였다. 병원의 수간호사가 워낙 인턴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사람이었던지라, J는 호되게 혼이 난다. 의사 중 하위계급인 인턴이었던 그는 그녀를 보는 순간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그날을 마무리하고 식사를 하러 갔다가 다시 그녀를 마주한 그는 그에게 힘내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렇게 마음을 주고받았던 둘은 결국 연인이 된다. 하지만 사귀기로 하고 5일 후 그는 입대를 한다. 그리고 전라도의 한 섬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그렇게 둘의 원거리 연애가 시작된다.
낯선 섬에서의 의사 생활은 여러 가지로 힘이 들었지만, 저자는 섬에 유일한 의사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1년을 보냈던 것 같다. 그중 힘들었던 것은 자신이 의사인 양, 무언가를 요구하는 환자들과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환자들이었다. 아무래도 섬에는 뱃사람들이 많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험악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칼부림도 나고, 소주 병으로 서로를 가격해 피투성이가 된 체 찾아오기도 하고, 원하는 대로 진료가 안되었다고 대놓고 위협을 하기도 한다고 하니 참 놀라울 뿐이었다. 물론 파도 소리를 듣고 경치를 감상하며 힐링을 하기도 하고, 저자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책의 반은 진료를 보며 일어난 이야기이고, 반은 J와의 연애를 한 이야기였다. 책 속에 그녀 이야기를 읽으며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 나도 괜스레 설레었다. 과연 이 둘은 어떻게 될까?의 축과 의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책의 두 축이었던 것 같다.
1년간의 섬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그는 경기도로 부임지를 옮겼다고 한다. 섬 의사의 사계절이라는 제목 그대로 책 속에는 인턴을 마치고 섬에서의 의사 생활을 했던 1년여의 이야기만 담겨있다. 그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더 이상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없어서 아쉽긴 했다. 인턴은 정말 잘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데 역시나 그 말은 사실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