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를 흥미롭게 읽었다. 단편 모음집이었는데, 색다른 주제를 특이한 시선에서 그려서 기억에 남았다. 근데, 이 소설은 좀 어려웠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이 작품이 왜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우선 현실의 관점에서 작품을 해석하려고 해서 그랬던 것 같다. 뒤로 갈수록 SF적 요소가 선명해지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의 폭을 넓게 봐서 그냥 끄덕여지긴 했다. 그래도 어렵긴 어렵다.
인간에게 고통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동안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다. 백 세 시대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건강하게 백 세를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에게 고통의 문제가 사라진다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것은 종교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의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결할 수 없기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종교에서 찾으려는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책 속에는 종교단체와 제약회사가 얽혀있다. 시작은 제약회사였다. 고통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한 회사가 계속 신약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제약회사로부터 빼돌린 내용을 가지고 종교단체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종교단체의 사이비성과 함께 그에 속한 신도들에게 투약을 하게 되고 상당수의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이 퍼지기 시작한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두 아들 태와 한을 데리고 종교단체에 들어가는 어머니 홍. 하지만 그날 이후 홍은 아들들을 만날 수 없게 된다. 이런저런 정보를 통해 아들들을 만나기 위해 잠입하는 홍.
한편, 제약회사의 폭파 사건이 터진다. 사고로 제약회사의 대표 부부와 아들이 사망한다. 다행이라면 그들의 딸인 경은 사고가 일어나기 얼마 전, 자살시도로 병원으로 옮겨진 터라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사건의 범인과 모든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형사 륜과 순이 투입된다. 그리고 잡힌 범인은 태였다. 그는 종교단체 소속이라고 밝혀졌는데, 과거 종교단체에 있었지만 믿지 않는다는 뜻을 전한다. 그가 요구한 것은 자신의 형인 한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태와 달리 종교에 심취해 있는 형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이 종교단체의 교주는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읽을수록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교주같이 보였던 인물들은 결국 추종자였다. 그리고 밝혀진 교주의 정체에 경악했다. 세상에나...! 정말 예상치 못한 반전 같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동성 간의 결혼과 임신. 고통의 문제 역시 그런 식으로 이해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역시 그래서다.
근데 우리의 현실 속 종교단체 중에도 고행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버텨야 한다고 가르치는 종교들이 상당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통은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고통이 어떤 의미를 가지냐에 따라 견딤의 정도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장편소설이지만, 단편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은 각 편의 제목과 한자어로 풀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