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에게 말을 걸다
김교빈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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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친하지 않음에도 틈틈이 명화에 대한 소개 책들을 통해 이제는 조금 익숙한 그림들이 생겼다. 요즘은 단지 명화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그림을 통한 치유처럼 여러 가지 감정들을 다독이는 책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현직 중등교사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사 속 굵직한 상처들을 여실히 드러낸다. 책을 읽는 내내 큰 아픔 속에서도 의연히 삶을 살아냈구나! 하는 놀라움이 들었다.

책 속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했던 그림들이 등장한다. 원작을 싣기 힘든 경우, 저자가 그린 모작이 담겨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내용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여류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였고 또 하나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야기였다. 프리다 칼로는 아마 개인사 때문에 더 유명한 작가일 것이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던 터라 한 쪽 다리가 짧은 그녀는 큰 교통사고로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나타낼 줄 아는 당당한 작가였다. 그의 삶에는 디에고 리베라가 자리 잡고 있다. 유명한 화가였던 그는 프리다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고, 여러 미술적 조언을 해주는 멘토였다. 한편으로는, 타고난 바람기 때문에 프리다에게 큰 상처를 입힌 장본인이기도 했다.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디에고 리베라는 악연일 수 있지만, 화가로써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과 삶의 이야기는 내게 또 다른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에 얽힌 이야기 또한 가슴을 울렸다. 가난했지만 예술가를 꿈꾸던 뒤러와 그의 친구는 먼저 돈을 버는 사람이 친구의 뒷바라지를 하기로 했다. 뒤러의 친구가 먼저 취직을 하게 되고 그의 뒷발이지 덕분에 뒤러는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뒤러가 그림을 통해 명성을 쌓자, 뒤러는 친구가 그랬듯 친구를 미술학교에 보내고자 했지만 친구는 험한 육체노동으로 손이 굳어 더 이상 화가의 꿈을 꿀 수 없게 된다. 그런 친구의 손을 그림으로 남기게 된 뒤러. 아마 이 내용을 몰랐다면 그림을 보면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이 그림에 얽힌 사연을 마주하고 나니 내 삶에도 뒤러의 친구처럼 오롯이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던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삶은 그들의 희생과 관심을 먹고 자랐던 것 말이다.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낸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그 일이 내게 독이 아닌 득이 되었다고 말이다. 여전히 아프고 힘든 기억임에도 그 일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웅크리고 있었을 것 같다는 저자의 고백은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삶에는 흔히 희로애락이 있다고 한다. 폭풍 없이 잔잔한 배항해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한 폭풍우를 만났을 때 삶의 진면목이 발견된다. 거센 풍랑 같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배멀미를 이겨낼 정도의 마음 체력이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 게 한결 수월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여운이 되어 맴돈다. 부디 어떤 고난 속에서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자존감이 내게도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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