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태신앙이다. 어려서부터 주일은 교회에 가는 날이라는 인식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물론 여러 번의 방황과 체험을 통해 부모님이 준 종교가 아닌 내 신앙을 갖게 되었지만, 스펀지가 물을 빨아드리듯 선택의 여지없이 기독교 안으로 들어왔기에 소위 말하는 간증이 될만한 일생일대의 큰 체험이 없기도 하다. 매주 설교시간을 통해 듣는 말씀들은 주일학교부터 지금까지 때론 교사를 하며 아이들에게 공과공부를 통해 전했기에 사실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 낯설지 않고 익숙한 것 때문에 새로운 시야를 갖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책에서 저자가 언급했듯이 왜 주일 설교시간은 성경을 다각적으로 마주하도록 가르치지 않을까? 오히려 유치부나 유소년부와 같은 어릴 때는 아이들의 집중을 위해 영상을 활용하기도 하고, 사진이나 소리 등을 활용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청각자료보다는 성경 본문만을 풀어내는 설교를 접하게 된다. 다행이라면,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의 경우 교회 역사를 전공하신 탓에 성경의 원문과 역사적 배경을 아울러 설명하고 때론 지도를 활용해서 설교를 하신다. 그러다 보니 같은 본문이어도 색다르게 다가올 때가 많다. 그래서 목사님은 성경을 다이아몬드라고 칭하신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빛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책 너희 등불을 비추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다. 우선 익히 알고 있는 말씀인데, 새롭고 낯설다. 때론 그동안 알고 있던 말씀과 다르기도 하다. (이단이나 이상하게 다르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아하! 하고 무릎을 칠만한 설명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아니 책 시작부터 끝까지 가득하다.
빛 하면 떠오르는 말씀은 아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일 것이다. 그 밖에 빛 하면 떠오르는 말씀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빛을 언급한 말씀이(직. 간접 포함)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총 39가지의 성경 속 빛과 관련된 말씀이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당시의 사용된 등잔을 비롯하여 각종 그림과 사진들을 실어서 독자의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말이나 글로 하는 설명 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이해도가 더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경이 쓰인 당시 배경과 역사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 그동안 놓치고 있던 성경 속 새로운 빛이 눈에 띈다. 이게 이런 뜻이었어?! 하는 말씀도 상당하다. 처음에 언급한 빛과 소금에 대한 말씀 속 빛의 의미 또한 그랬다.
이렇듯 빛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른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즉, 빛은 '사람 앞에 비치게'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 앞에 스스로 환한 존재로 빛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내 존재가 바뀌어 빛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등불을 켜서 빛을 비추는 몫을 다하는 것, 그 역할을 실천하는 것이라면 충분하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자기 삶의 자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힘을 얻어 꿈을 꾸고 숨을 쉴 수 있다면,
우리는 그의 빛이 되어 준 것이다.
그동안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말씀을 세상과 구별되고 세상에서 주도적인 역할, 선한 영향력을 끼칠만한 역할로 해석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성경을 읽을수록 의기소침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학벌도, 외모도, 직장도 뭐하나 내세울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책 속 한 줄은 내게 이해를 넘어 깊은 위로를 주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쓰기 보다 그저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 작은 자 하나를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타인을 내 생각 속에서 재단하지 않는 것 성경 속 빛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빛 하면 눈에 띄는 것, 반짝이는 것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성경 속 빛 또한 같은 의미로 자연스레 해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경 속 빛은 세상에서 말하는 빛과 다른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그저 내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내 생각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배제하지 않는 것.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그렇기에 빛은 가치가 있다.
등잔은 없어도 마음의 등불을 켤 수 있다.
눈에 불을 켜지 말고, 마음의 문을 열자.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불빛을 반사하지 못하고
차별과 배제, 혐오에 찌들어 사는 것을 당연한 것인 양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 덕분에 더 초라함을 느낄 수도 있었던 벳새다 들판의 사람들처럼,
서로 뽐내고 더 인정받으려고 눈에 불을 켠 채 살아가는 이들 속에서 마음에 등불을 밝히는 삶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