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잔혹사편 - 벗겼다, 세상이 감춰온 비극의 순간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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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의 5번째 편의 주제는 잔혹사다. 잔혹사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가? 책 속에 어떤 장을 읽어도 잔인하고 끔찍하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일제의 만행 또한 이 파트에 담겨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빠져있어서 유감이긴 했다.

총 10장에 이르는 주제들이 하나같이 놀랍고 비극적이다. 현재 과거에 일어난 사건도 있지만 진행 중인 상황도 담겨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사람의 욕망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통해 마주할 수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자면 아무래도 우리의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내용 때문에 천일염 사재기 등으로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인류 최대의 원전 폭발사고로 불리는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을 읽으며 원자력의 무서움에 대해 다시 한번 느꼈던 시간이었다. 또 하나는 역시나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인수 공통 전염병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둘 다 현재 우리의 상황과 가장 가까운 이슈여서 그런지 빠져들어서 읽었던 것 같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는 1986년 벌어졌다. 4호기 원자로가 터졌고 이는 폭발사고로 이어졌다.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무지와 욕심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빨리빨리 주의가 낳은 부실공사가 그중 첫 번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핵무기 경쟁을 벌이는 중이었고, 화력발전보다 운영비가 적게 드는 원자력발전소의 건립은 대량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원전을 건설하면서 안전 공사를 건너 뛰었다는 데 있었다. 거기다 냉각수를 사용하는 VVER방식보다 흑연을 사용하는 RBMK가 훨씬 비용 면에서 경제적이었기에 소련은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RBMK 방식으로 대부분의 원전을 짓는다. 그리고 과거 부실공사로 건너뛰었던 안전 실험을 폭발 하루 전 하기로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지 않았는데다가 당시 실험 담당자조차 경력이 몇 개월 밖에 되지 않는 신참이었다는 것도 사고를 키운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 큰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원자력에 대한 무지 때문일까? 그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 결국 수백만의 사람들이 피폭되고 사망하게 된다.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오히려 1,100Km나 떨어진 스웨덴에서 먼저 알게 된다. 체르노빌의 방사능 물질이 스웨덴까지 날아갔고 스톡홀름 인근 포르스마르크 원자력발전소에서 경고음이 울렸기 때문이다. 이후 타국에서 사고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했지만 소련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다. 결국 이 일은 소련 붕괴의 신호탄이 되었고,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체르노빌 근처 지역은 개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인수 공통감염병에 대한 부분은 읽는 내내 씁쓸했다. 사실 코로나19 때 역시 바이러스를 옮긴 동물이 박쥐라고 밝혀졌고, 박쥐로부터 인간에게 감염이 확산되어 결국 전 세계적으로 끔찍한 유행이 일어났는데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동물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고 보니 모든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동물들이 살 공간마저 빼앗아버린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볼 수 있으니 결국 인간의 죄과는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친 스페인 독감(이름의 출처가 궁금했는데,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을 비롯하여 원숭이 두창, 메르스, 에볼라, 사스 등 요 근래 특히 유행한 감염병들의 특징과 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마주하면서 코로나19 이후에도 바이러스는 계속 출몰할 것이고, 변이는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책 속에 등장한 잔혹사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에서 모든 사건들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내 것을 더 많이 지키고자 하고,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는 얄팍한 속내가 결국은 많은 사람들의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읽는 내내 가슴 아팠다. 잘못된 판단과 탐욕의 끝은 결국 희생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누군가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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