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딸만 둘이다. 그래서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을 경험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막내가 아들인 다자녀 가구가 상당수 있다. 공통점이라면, 딸이 많다는 것과 아버지가 장남이라는 것이다. 부모님이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차별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내가 집에서 피부로 느낀 게 아니었던 터라, 남녀 차별에 대한 인지를 못한 체 살던 중 한 작품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 그게 차별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미러월드를 읽기 전에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서 그럴까? 미러월드라는 뜻이 너무 선명히 다가왔다. 보기에는 내 모습이 명확히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 거울은 거꾸로의 모습을 비추는 것이니 말이다. 책 속에는 남과 여의 모습이 지금과는 정반대로 그려진다. 소설이기에 상당한 과장이 있긴 하지만(일본이 정말 이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과한 장치들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뭔가 느낀 바가 크다.
책 속의 화자는 3명의 남성 주부다. 가모장시대라고 볼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성은 집안 살림을 하고, 결혼 후에는 회사를 관둔다. 여성은 돈을 벌어오고, 집에서의 모든 주도권을 갖는다. 물론 출산은 여성이 한다. 출산을 기준으로 앞뒤로 6개월간 도우미나 식재료 등을 비롯한 모든 생활에 관한 것을 나라에서 제공해 준다. 여성이 육아휴직을 쓸 수는 있지만 많지 않다. 성적인 부분에서도 여성이 주도권을 잡는다. 그렇기에 성폭행의 대부분이 여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남학생들의 꿈은 남편이 되는 것이다.
스미다 류지, 나카바야시 스스무, 이케가야 요시오는 모두 자녀를 가진 남성 주부다. 스미다 류지는 이발소를 경영하고 있다. 사실 스미다 류지의 장인 스미다 쇼헤이 또한 이발사였는데, 아내인 에리와 사귀고 나서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이발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자격증을 취득한다. 결혼 후 자연스레 장인과 함께 이발소 SUMIDA를 꾸려나가고 있다. 물론 사업자 상의 대표는 장모인 스미다다. 시간이 갈수록 장인 스미다와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류지는 급기야 장인의 지인에게 쓴소리를 듣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데...
나카바야시 스스무는 현재 생명보험 외판원으로 일한다. 과거 그는 간호사였는데, 같은 병원에 근무하던 내과의 지즈루와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둔다. 시간 여유가 있기에 모두가 고사하는 학부모회장을 맡게 되었다. 늘 다과 준비는 남성들이 몫이었는데, 같은 임원인 이케가야 요시오가 딴죽을 건다. 다수결로 정해지긴 했지만, 어렵지도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남성만 다과를 준비해야 하느냐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데...
이케가야 요시오는 전직 교사다. 아내인 유우코와는 같은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둔 것은 요시오였다. 집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는 말마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요시오에게 질려가던 중, 돌봄 교사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 아이를 알게 된다. 엄마가 바람나 이혼했다고 알려진 아이의 집안 사정을 듣게 되는 요시오는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듣고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남편이 동료 남교사를 성추행 한 문제를 일으키자 이혼을 결심하는데...
세 명의 이야기가 진행되기 앞서 한 아이의 이야기가 각 장마다 등장한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이 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또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겹쳐지는 이야기는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까?
지금은 전보다 남아선호사상이 많이 약해져서, 요즘은 오히려 아들을 낳으면 위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낙태를 선택했다는 것 또한 옛날 일이 되어 버린 상황이라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는 이래저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히 존재하고 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될 즈음에는 각종 소설 속 상황들이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젠더 평등이 이루어져 있을까? 남녀가 역전된 상황 역시 불쾌한 걸 보면, 성차별은 모두가 문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