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의 네 번째 주제는 경제다. 사건과 인물 그리고 전쟁을 지나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중 하나는 역시 경제일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경제를 빼놓고는 역사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인류가 발전한 이래로 사유재산과 돈은 어느 시대에서건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사 속 굵직한 사건뿐 아니라 매일매일 벌어지는 세계 각 곳의 문제들에는 돈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이미 들어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강점은 그 모든 이야기의 원인과 진행과정 그리고 결과를 한 주제를 통해 명확히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의 강의를 통해 티브이 프로그램으로 접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기에 구어체로 씌어 있다. 덕분에 마치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몰입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총 10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한 나라의 이야기일수도, 또는 대륙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특정 시기뿐 아니라 오랜 시간 걸쳐 등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령 유럽의 가히 문화혁명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를 뒷받침한 주문하면 바로 떠올리는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커피 이야기, 석유나 마약 등의 이야기가 책 속에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모든 이야기가 하나하나 흥미로웠는데, 메디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이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시작은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바람으로 시작했지만, 적절한 시기를 만나 부가 쌓이고, 때론 그 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뇌물을 써서 집안을 일으킨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아쉬움이 남았고, 결국 그들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까지 이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메디치 가문이 어떻게 예술인들을 후원하고(물론 그 후원의 대가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마주하고 역시 Give & Take! 구나 싶긴 했다.), 지금까지 예술작품들이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까지 마주하고 나니 메디치의 공과 실이 정확히 보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상하이 이야기였다. 지금은 중국에서 손꼽히는 경제 대도시 상하이가 과거에는 뻘밭에 낙후된 도시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상하이의 발전에는 서양 세력(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이야기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아편 전쟁 등으로 인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던 청나라는 상하이를 비롯한 5개의 도시를 조계로 내줄 수밖에 없었고, 중국 땅이지만 중국 법이 적용받지 않는 도시가 된 상하이는 그렇게 이중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다. 같이 발전을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조계지를 차지한 외국인들과 중국인들에 대한 격차가 너무 컸다. 그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폭동은 결국 중국의 정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니, 중국의 공산화에 결국 열강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겉으로는 크게 발전되고 멋지게 보였지만, 막상 상하이의 속 이야기를 마주하니 참 안타까웠다.
경제 편에 등장한 이야기 속에는 가진 자 과 가지지 못한 자의 이야기가 극단적으로 대비되었다. 오히려 가져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도둑질 당하고, 그 도둑질한 것을 마치 자신의 것으로 챙기는 추하고 더러운 모습이 여기저기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선량하게 지켜낼 수는 없는 것일까? 꼭 남의 것을 빼앗고, 남에게 위해를 가해야만 내 배를 불릴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하고 정리가 되지 않았던 이야기가 덕분에 말끔하게 이해되었지만, 막상 이해하고 보니 씁쓸함이 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