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농노해방이 가까워졌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제 드디어 자유로운 농민이 되어
조금은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제까지의 경작지는 지주가 5분의 2를 가져갔고,
이를 소유하려면 고가로 매입해야 했다.
지주의 집에서 일하던 가내 농노들은
빈손으로 쫓겨나 실업자가 됐을 뿐이다.
'어쩌면 지주들은 황제의 명랑에 따르고 있을 뿐 아닐까?'라고 사람들이 의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번에도 흥미로웠다. 이런 맛에 세계사를 마주하는 것일까? 영국 편을 만난 후, 이번이 두 번째 만나는 명화로 읽는 시리즈인데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세계사를 좋아하지만, 큰 틀 속의 역사만 알지 각 나라의 역사에는 관심이 있지 않는 한 마주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왕가의 이야기는 정말 헷갈리고 또 헷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거나, 선대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는 경우가 아주 드문데, 서양사의 경우는 우리와 같은 일이 오히려 드문 것 같다. 특히 러시아는 정말...! 오죽하면 이 책의 저자 역시 도대체 왜 이렇게 가은 이름을 붙이냐고 넋두리를 할까? 같은 이름이 많다 보니, 1세 2세가 붙는 건 당연하다. 나름의 구분을 해야 하니 말이다.
영국의 경우 핏줄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에 비해 러시아는 피가 섞이지 않아도,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전혀 생뚱맞은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권을 잡은 후 후계자를 세우기 위해 가까운 친척(동생의 아들 등)을 찾으니 말이다. 대신 왕이 되기 위해 이루어진 이야기는 정말 어마 무시하다. 예를 들자면,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차르(러시아 황제)가 되거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차르가 되기도 한다.
러시아 왕가의 특이점이라면, 유독 여왕이 많았다는 것이다. 왕좌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점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똑똑한 여왕이 왕좌를 물려받아서(때론 뺐거나), 나라를 윤택하게 만드는 게 더 나았겠다 싶기도 하다.
각 장마다 흥미로운 사건들이 등장한다. 가령 우글리치 교회의 종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이야기나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와 누나 소피아 간에 벌어진 남매 전쟁, 남편인 표트르 3세를 살해하고 여제가 된 예카테리나 2세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중 우글리치 교회의 종이 어떻게 유죄를 선고받았을까? 어느 나라에 나 정권의 위협이 되는 존재는 황비(왕비) 쪽 측근들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세도정치라 불리는 외척들이 정권을 잡고 흔들었던 시기가 있지 않은가? . 당시 전 황비(아마 스타 시야)의 가문(로마노프)과 현 황비의 가문(고두노프) 간에 정권을 향한 대립이 있었다. 그리고 혼외자로 간주된 하나 남은 이반 뇌제의 핏줄 드미트리는 우글리치 마을로 쫓겨나서 살고 있었는데, 그 드미트리가 살해당한 것이다. 엄연히 드미트리는 황제였던 이반 뇌제의 아들이었는데, 그를 살해한 것은 바로 현 황비의 오빠인 보리스 고두노프의 짓이었다. 하지만 교묘히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드미트리가 칼을 가지고 놀다 사고를 당했고, 이는 어머니와 친족이 돌보지 않아서 난 사고라고 꾸민다. 그와 함께 드미트리 죽음에 대한 가짜 정보(사실은 진짜 정보)를 전했다는 이유로 교회의 종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과연 종은 어떤 벌을 받았을까?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로마노프가의 마지막은 처참했다. 사회주의가 뿌리내린 소련이었기에, 황제 니콜라이 2세의 가족을 향한 암살은 정도가 너무 심했다. 또 한편으로 신기했던 것은, 과거부터 진실을 숨기고 가짜 뉴스가 판치는 나라다 보니 십수 년이 지난 후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 살아있었다는 뉴스와 함께 자신을 과거의 그 인물이라고 이야기하며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참 무시무시하고, 때론 더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권력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라는 큰 틀이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