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의 문제가 아니고, 맹장의 문제도 아니고, 삶 그리고 ...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이었어. 그리고 떠나는구나, 내게서 떠나는구나.
그런데 난 그걸 막을 수 없고. 그래, 날 속일 필요가 있을까?
내가 죽어가는 것이 나 빼고 모두에게 분명한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작품집 안에는 총 3개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얼마 전, 타 출판사의 책을 읽은 독자의 서평을 읽은 기억이 있어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반가웠다. 서평을 통해 간접 경험했던 톨스토이의 죽음의 이야기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표제작으로 실린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비롯하여 책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주제는 "죽음"이다. 각기 다른 모습의,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각자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르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요직인 법원 위원으로 있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소식이 전해진다. 부고문을 통해서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우선 표면적으로는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조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속으로는 그의 자리에 누가 앉을 수 있을까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니 말이다. 친우이자 동료였던 표토르 이바노비치는 조문을 가게 되고, 이반 일리치의 부인인 프라스코비야 표도르브나로 부터 이반 일리치의 투병기를 들은 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다.
처음에는 유쾌한 소년으로, 학우로, 그다음에 성인이 되어 동료로서 매우 가깝게 알고 지내왔던 한 인간이 겪은
고통에 관한 생각이 들자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자신과 부인이 가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인식으로
불쾌하면서도,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의 이반 일리치의 이야기의 생애와 가족관계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의 투병기와 죽음의 두려움 그리고 병으로 인한 고통이다.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그는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는 것과 함께 가족들이 건네는 말조차 고깝게 들린다. 죽음의 막바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안정을 찾은 이반 일리치.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죽음을 향한 차이를 통해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반면 두 번째 등장한 주인과 일꾼, 세 죽음 역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시각의 차이가 느껴진다. 주인인 바실리 안드레이치 브레후노프와 일꾼 니키타 스테파니치. 안드레이치는 50대 농부인 니키타의 급료를 야박하게 주고, 그럼에도 생색을 내는 사람이었다. 물론 니키타 역시 그가 자신의 급료를 적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지만 딱히 일할 곳이 없는 터라 니키타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폭설이 내리는 날 길을 재촉했다는 사실이다. 돌아가지만 이정표가 잘 갖추어진 길보다 빨리 가는 길을 선택한 안드레이치. 하지만 결국 숲에서 길을 잃고 우여곡절 끝에 마을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마음이 급한 주인은 결국 길을 나섰다가 눈밭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만다. 말조차 길 나서는 걸 거부하자 그들은 결국 자리를 잡고 눈밭에 멈춘다. 하지만 시간을 버리기 아까웠던 안드레이치는 자고 있는 니키타를 두고 말을 타고 길을 나서는데...
세 죽음 역시 마부 표도르와 귀부인 쉬르킨스카야 부인의 죽음 이야기를 다룬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집착도, 편견도, 두려움도 없던 마부의 죽음과 주변을 원망하고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귀부인의 죽음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근데 아무리 봐도 두 사람 외에는 죽음을 겪는 인물이 없는데, 왜 제목은 세 죽음일까? 해제를 통해 반전 아닌 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이야기의 공통점에는 죽음 외에도 종교(신에 대한 마음)가 걸려있다. 죽음 앞에 두려운 인간은 자연스레 신을 찾게 된다. 하지만 보기에는 신앙이 있다 보이는 인물들이 의외로 마지막 앞에서 다른 존재에 기대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기도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당연한 것이지만, 책 속의 등장인물을 빌어 죽음을 접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과연 당신이 생각하는 죽음은 어떤가? 당신은 어떤 모습과 마음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낯설지만 피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