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이경옥 옮김 / 빚은책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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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이가 든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긍지를 갖도록 살고 싶어.

그때가 좋았다고 탄식만 하지 않고 상자 속에 있는 젊은 나를 당당히 마주할 수 있도록."

월요일 말차 카페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사실은 세 번째인^^) 아오야마 미치코 작가의 책이다. 전작의 특이한 형태의 연작소설을 읽고 흥미로웠는데, 이번 작품은 제목에 차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코코아, 말차처럼), 표지의 그림처럼 카페에서 이루어진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번에도 연작소설의 형태인데, 주된 주인공들이 있고 그 주인공들과 연관된 이야기가 이어진다.

1년 교환학생으로 호주 멜버른에 도착한 타치바나 아카네는 낯선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름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나.' 싶을 정도로 의사소통이 술술 되지는 않았다. 거기다 호주에서 일본인으로 사는 것, 특히 알바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는 9살 연상의 유리 씨가 있지만, 썩 호감이 가지 않는다. 우연히 초대받은 바베큐 파티에서 만나게 된 엔조지 스우는 자신을 부(Boo)라고 소개한다. 부는 아카네를 레이라고 부른다. 부의 부모님도 일본인이었는데, 10살에 호주로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고 미술상을 경영하고 있다. 외로운 타지에서 만난 부는 의외로 레이와 잘 맞는 상대였다. 조금씩 부에게 호감 이상을 느끼는 레이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바베큐 파티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이 부가 선수라는 말을 했기에 레이는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1년 뒤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부가 레이에게 사귀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1년 기한부 연애를 하겠다는 말을 한다. 일본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은 날이었다. 부는 자신의 친구가 화가인데, 레이를 그리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한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무척 마음에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장시간이 힘들다면, 에스키스(밑그림)를 그릴 시간 정도라도 괜찮다는 말에 레이는 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날 역시 부를 처음 만난 날 입었던 빨간 블라우스를 입고 가는 레이. 그렇게 화가인 잭 잭슨은 레이를 그리기 시작한다. 자신을 그리는 잭 잭슨 옆에서 그림을 지켜보는 부. 부가 선물로 준 파란색 새 브로치와 빨강 블라우스를 표현하기 위해 두 가지 색을 사용하는 잭. 그리고 부와 레이는 눈이 마주친다. 그들은 과연 1년 기한부 연애를 끝낼 수 있을까?

총 4편의 작품이 담겨있는 책 속에 모두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잭 잭슨이 레이를 그린 그림 에스키스다. 사실 그림이 매개가 되긴 하지만, 각 이야기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에스키스라는 그림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레이와 부가 각 이야기의 주연으로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그들은 나이를 먹고 있었다.

또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카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표지 속 그 그림이 바로 세 번째 이야기의 장소를 담아내고 있었다. 만화가인 다카시마 츠루기는 과거 어시스턴트였던 스나가와 료의 울트라 만화대상 수상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한 잡지사로부터 스나가와와 함께 대담 요청을 받게 된다. 약속한 카페에 도착해서 보니 눈에 띄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구입했느냐는 말에 가시 돋친 듯 쏟아지는 주인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드디어 시작된 대담. 인터뷰를 할수록 괜스레 제자의 성공에 질투가 난다. 자신의 데뷔를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실제 이야기는 참 가슴 아팠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데뷔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제자의 말에 더 속이 상한다. 청출어람의 뜻이 그대로 드러난 상황도 말이다. 자신이 시킨 빨간색 토마토주스와 스나가와가 시킨 파란색의 버터플라이피 처럼 말이다. 인터뷰 후 스나가와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 다카시마. 원래 말이 없던 그가 쏟아낸 말에 비로소 스나가와의 진심을 깨닫게 되는데...

4편의 작품을 읽으며 나 또한 나만의 상상 속에서 작품을 나름 해석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에필로그가 마치 반전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책 속 주된 이야기는 레이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에필로그는 레이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누군가의 진심을 제대로 목도하게 된다. 비로소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고, 모든 감정들이 이해가 되었다.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닌 쌍방의 이야기로 말이다. 쌍방의 이야기가 되고 나니, 그 안에 담긴 모든 감정들이 더 선명해졌다. 그러고 읽어보니 이 문장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옆에 그이가 있어도 사랑이 가면 끝.

거꾸로 그이가 없어도 사랑이 여기에 있는 한은 끝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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