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울다
박현주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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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각자의 화랑이 있다.

그것은 그림의 형태로든, 책의 형태로든 그 인간이 사랑했던 어떤 형태로 만들어진다.

삶에서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은 쉬이 넘어가고, 고통과 절망으로 점철된 순간은 힘겹게 지나간다.

누군가에겐 완만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가파른 그 굴곡을 넘어가면

어느새 그의 화랑이 끝이 나고 죽음에 다다른다...

참는다는 것은 죽음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죽음까지 가지 않는다는 의미와도 같다.

요즘 도심에서도 까마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며칠 전, 전봇대 위에 있던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은 큰 아이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임에도 울음소리나 유난히 까맣고 큰(비둘기보다 훨씬 컸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새 중에는 가장 큰 새가 아닐까 싶다.) 까마귀를 보고 무섭다는 표현을 했다. 나 역시 며칠 전 까마귀 무리가 날아다니며 서로 티격태격하며 큰 소리로 우는소리에 무척 놀랐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까마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더 심해졌었다. 예전부터 까마귀는 죽음과 관련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책의 제목인 까마귀가 울다 역시 까마귀가 울면 누군가 사망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과연 까마귀가 우는 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현과 철, 한은 저승사자다. 그들의 임무는 죽은 영혼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명부에 기록된 명대로 사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아직 죽을 때가 안되었는데 죽는 사람들이다. 바로 자살자들. 그래서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임무가 주어진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놓고 막기보다는, 간접적인 힘을 쓸 수 있다. 가령 자살자 주변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자살자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거나, 생명의 전화 등을 통한 방법 말이다. 근데, 살아있는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인 현과 철, 한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명부 상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 눈에는 이들이 보인다. 근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들을 알아본 사람이 생긴 것이다. 남은 삶이 얼마 안 남은 것도, 자살하려는 마음을 먹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특이사항이라면 5년 전,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시 현에 의해 자살시도를 포기했던 이정운이 다시 현의 앞에 나타난다. 아무리 훑어봐도 정운은 자살하려는 마음도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정운은 저승사자들이 보인다.

오지랖 넓은 저승사자 철 때문에 더 가까워지는 이들. 급기야 함께 식사를 한다. (사실 저승사자들은 생이 얼마 안 남은 사람들과만 접촉이 가능하다. 그들만 저승사자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인 정운 덕분에 저승사자들은 맛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정운을 살펴봐도 자살 징후를 느낄 수 없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서로에게 편한 존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고 정운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저승사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검은 갓에 도포를 입은 이미지(전설의 고향이 만든 이미지다.) 말이다. 생과 사에 있어서 1의 융통성도 없는 그들이기에, 저승사자는 늘 차갑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현과 철은 그렇지 않았다. 자살자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노력이 참 눈물겹다. 염색약을 파는 화장품 가게 할아버지를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철, 10년째 자살을 생각하는 김밥 할머니에게 매일같이 김밥을 사는 현. 얼마 남지 않은 생조차 스스로 끊어내려는 할아버지의 선택에 피눈물이 나는 철의 모습도, 내일도 김밥을 사러 오겠다는 말로 할머니에게 다음날을 선물하는 현의 모습도 참 따뜻했다. 그들의 힘겨운 노력이 어떻게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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