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한강
권혁일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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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다 받아 놓고 나니 그러질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리 한심하고 멍청한 모습이라도, 그 자체가 나였으니까요.

하나씩 버릴 때마다 나의 일부분이 잘려 나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나라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죠.

저는 저를 지워버리려고 자살한 게 아니거든요.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나를 지키고 싶었던 것뿐 이지."

자살 소식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누구나 살면서 자살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여전히 종종 한다. 물론 종교적 이유 때문에 실행에 옮긴 적은 없지만 말이다. 자살을 한 사람의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의 자살률은 누구보다 높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다, 그 사람이 자살할 동안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덧붙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친구의 자살. 죽기 전까지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친구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모르겠다는 작가의 마음이 바로 이 책에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자살한 사람은 모두 이곳에 모인다. 제2한강이라고 불리는 곳. 어떻게 죽었든 관계없이, 자살한 사람을 모두 이 물살을 따라 이곳으로 온다. 서울과 똑같은 모습의 이곳이 다른 것이라곤 모든 게 푸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살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집이 무상 제공된다. 옷은 생전에 입던 옷을 입는다. 그렇기에 돈을 벌 필요가 없다. 물론 제 2한강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척 무료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찾아서 자원봉사처럼 직업을 갖기도 한다.

주인공인 홍형록은 30대의 미혼남으로 한강에서 뛰어내렸다. 형록에게 말을 거는 류이슬. 모든 게 낯선 그를 안내해 준다. 19살의 에 띈 모습을 하고 있는 이슬은 제2한강 거주 10년 차의 왕고참이었다. 그 말은 이슬이 자살한 지, 1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슬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형록과 비슷한 또래였을 거라는 가정하에 이슬은 형록에게 말을 놓는다. 외모는 아저씨지만 말이다.

이슬의 도움으로 제2한강의 시설과 여러 가지 안내를 받는 형록. 그와 함께 책 속에는 제2한강의 거주자인 자살자들의 과거 사연이 하나 둘 풀어진다. 생전 60만 구독자가 있었던 뷰티 블로거 화짜 오현진, 생전 웹 개발 회사 과장이자 현재 제2한강 북부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오민철 등 다양한 사람들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진다. 외모에 자신이 없었던 현진은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던 서영이 대학 입학 후 예뻐진 모습에 놀란다. 그렇게 화장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현진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토대로 꾸준히 유튜버 화짜로 영상을 올린다. 악플들에 늘 의기소침해 있던 와중 일이 터진다. 화짜가 꾸준히 써왔던 화장품 회사에서 일부 광고료를 지원해 줬던 것인데 그걸 밝히지 않은 데 대한 후폭풍이었다. 넘쳐나는 악플에 화짜는 심한 우울증에 걸린다. 그때 화짜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서영이었다. 서영 덕분에 다시 힘을 얻은 화짜는 몇달만에 다시 영상을 올리는데, 한 번씩 등장해서 화짜의 속을 뒤집어놓는 댓글러가 등장한다. 그의 정체를 우연히 알게 된 화짜는 결국 자살을 결심하는데...

민철 역시 그랬다. 웹 개발 회사를 다니던 민철은 오류 때문에 팀장에게 쌍욕을 먹는다. 설상가상으로 팀원들 상당수가 퇴사를 하게 되자 민철이 할 일은 더 많아진다. 우울증과 대인기피가 심해진 민철은 마지막으로 팀장에게 손을 내밀지만, 오히려 더 심한 욕을 먹던 민철은 결국 처음으로 정시 퇴근을 한다. 세상으로부터 말이다.

중3 때 자살 계획을 세우고, 고3 때 실행하겠다 다짐한 이슬은 자살하는 마당에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3년이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 계획대로 실행을 한 지, 10년. 이슬은 제2한강에서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조건은 자기와 같은 19살. 10년 동안 있었던 터라 이슬은 제2한강에 아는 사람이 참 많다. 그럼에도 유독 나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생전 친구를 사귀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19살 친구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슬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고 며칠 있다 방문하지만 그사이 그 아이는 다시 자살을 택했다는 소식을 듣는데...

자살을 옹호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책을 그들의 상처나 괴로움이 얼마나 컸길래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컸다. 제2한강 속 사람들은 나이도, 성별도, 생전 직업도 다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데 인색하지 않다. 아마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 제2한강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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