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그건 네가 인간이기 때문이야'라고 현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어버리고 나면, 자신이 괴물이 되어버린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 같아서...
스스로 자신을 괴물이라고 인정하고 나면, 그때는 정말 괴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수현은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표지 아래 띠지에 적힌 그 한 줄이 무슨 의미인지 무척 궁금했다. 엄마를 죽인 사람을 죽여달라니...! 물론 책을 읽으며 그 의미를 알게 되었지만 그 한 줄의 의미는 독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자비의 사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괴물 정수현. 그는 청부살인업자다. 그의 손에 죽어간 사람은 참 많다. 다른 청부살인업자와 다른 점이라면, 죽어가는 사람이 고통스럽지 않게 단 시간에 죽음에 이르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을 무참히 죽여 드럼통에 넣은 후 시멘트로 발라버린 그 사람 또한 수현의 손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그날 그를 처리하고 난 후, 수현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정신을 잃는다. 사장인 조상기의 끄나풀인 창진에 의해 병원 진료를 받게 된 수현은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급성이 아니기에 항암을 받으면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수현. 이미 그의 손에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다면, 그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삶의 의지가 없던 수현을 안타깝게 여긴 의사는 미술치료를 권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남은 한 장의 명함 속에는 하늘 공방이라는 미술치료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희주는 미술치료사다. 그녀에게는 큰 상처가 있다. 어린 절 엄마이자 유명한 화백이었던 유혜경의 죽음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 아빠 강창수와의 관계는 삭막해졌다. 그런 희주가 아빠와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아빠의 조교였던 윤보영 때문이었다. 희주를 살갑게 챙겼던 그녀. 근데 아빠가 보영과 결혼을 하겠단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던 걸까? 보영의 친절함에 넌더리가 난다. 엄마 자리를 빼앗길 수 없었다. 그렇게 아빠와 거리를 두고 희주는 유학길에 오른다. 엄마가 그렸던 그림을 그녀도 그렸다. 단, 화가가 아닌 미술 치료사가 된다. 미국 유학시절 만난 첫사랑 명훈. 하지만 명훈은 희주의 배경을 보고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무참히 버린다. 첫사랑 명훈과 일방적인 이별을 경험한 후, 희주는 자신의 삶이 이렇게 된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만든 누군가에게 복수를 꿈꾼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그리고 엄마의 부재를 만든 그 살인자를 타깃으로 삼자 갑자기 삶의 의지가 생겼다.
그때는 왜 그리도 나약했는지. 왜 그리도 쉽게 눈물을 흘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인생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복수'라는 뚜렷한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복수는 우울하고 지루했던 한 사람의 하루를 참으로 활기차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중추 신경계를 자극하는 카페인같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던 수현이 희주의 공방을 찾아갔던 이유는 희주가 청부살인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수현이 현수에게 건넨 한 장의 사진에는 수현의 누나인 시은이 담겨있었고, 그녀가 죽이고자 의뢰한 사람은 바로 수현이었다. 다행이라면 수현의 친한 동생인 현수에게 의뢰가 들어왔다는 점이다. 수현은 궁금했다. 그녀가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말이다. 그렇게 공방을 찾은 수현은 희주와 매주 수요일 치료를 받게 된다.
한눈에 희주는 수현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와의 수업을 통해 조금씩 그의 존재를 알아가는 희주. 상처가 드러나면서 그들 사이에는 이상한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예상치 못한 접점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원수라 볼 수 있는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싹튼다.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둘 사이의 비밀을 몰랐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순식간에 빠져든 둘은 서로가 너무 애틋해진다. 그녀를 지키고픈 한 남자와, 그런 그가 살길 바라는 한 여자의 이야기. 과연 비밀은 어떻게 밝혀질까? 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