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보라고 소리 지르지 않고, 조용히 작은 생명으로 기쁘게 살다 가만히 떠나는 사람,
최소한의 연민과 넉넉한 존중을 가지고 이웃을 대하는 사람,
마음 아픈 자의 눈을 가만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이 모든 미덕을 고요히 가질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상처받은"과 "인간"은 어울릴 수밖에 없는 단어인 것 같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상처를 주고받는다. 코로나로 많은 것이 멈춘 지 3년이 넘었다. 그 시간은 우리의 삶에 참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졌고, 사람이 많은 장소가 부담스러워졌으며, 비대면이 더 편리해졌다. 문제는 점점 기계화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누고, 이야기와 체온을 나누는 상황들이 불편해지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책 속에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는 수녀이자 영성학 교수다. 코로나로 대면 강의가 멈추고, 줌으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불편하고 낯설었지만, 시대의 요구에 맞춰 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학생들은 줌 강의를 더 선호하고 좋아했다는 저자는 자신 역시 줌 강의의 장점을 깨닫게 되었단다. 학생들이 칠판에 쓴 내용이 잘 안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단다. 또한 강의의 주체의 변화 또한 느꼈다. 그동안은 강의하는 교수가 주체가 되어 일방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면, 이젠 학생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다움에 방점이 찍혀있는 이 책에는 총 12가지의 인간다움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다. 몸에 대한,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 몸과 생각에는 무엇이 적혀있을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집단주의의 문화는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라는 단어의 의미가 코로나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가 아닌 나에 집중해야 하는 분위기는 특히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더 컸을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타투와 장애인, 젠더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다움의 모습은 머리와 가슴 모두를 이해시키기 쉽지 않았다. 특히 비만한 몸을 가진 사람에 대해 사회가 어떤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는지, 그로 인해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책 속에 펼쳐졌다. 그 사람이 내게 무슨 해악을 끼친 것일까? 그 사람이 우리 사회에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만들어냈을까? 그런 잣대를 가지는 게 옳지 않다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자연스레 같은 모습으로 판단하고 재단하며 동조하니 말이다.
책 속에는 많은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차별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갈수록 진해진다. 인간다움을 생각할수록 상처는 더욱 도드리 지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책을 통해 그런 상처받은 인간다움을 끄집어낸다. 어쩌면 종교인이기에 더 민감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상처를, 타인의 상처를 보듬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상처받은 인간다움 치유의 시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