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참사로부터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바로 유류품을 모아둔 사진이었다.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지만, 밟히고 눌린 자국이 선명한 신발들과 핸드폰, 이어폰들... 주인을 잃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유류품을 며칠까지 어디에 모아두겠다는 기사였다. 소중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지녔던 그 물건들은 과연 주인을 찾아갔을까?
이 책의 저자는 30년 넘게 재난수습 전문가로 현재 재난수습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9.11테러, 아이티 대지진 등 세계적으로 참혹했던 자리에서 그는 시신과 유류품을 수습하는 일을 맡아서 했다. 책 속에는 그가 수습했던 수많은 안타까움과 아픔 그리고 슬픔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그는 그 상황들을 지켜보며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그는 일을 하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담았다.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사망한 사람의 존엄을 챙기는 것인 동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라는 것 말이다. 그가 몸담았던 현장들의 경우 재난 수준으로 참혹했기에 수습을 할만한 장비나 장소가 협소했다. 특히 테러가 난 후 시신을 수습할 수 있는 곳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가까운 장소이다. 시신의 상태 역시 입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무너지고 깔린 더미 속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가족도 쉽지 않을 듯싶다. 온전하지 않은 유해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가족에게 보내기 위해 그는 참 무던히 애를 쓴다. 때론 현지 상황을 모르는 관계자들에 의해 막 다루어지거나, 빠른 일 처리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행하는 행동들을 마주할 때 그는 자신의 의견을 내뱉는다. 적어도 그렇게 스러져간 그 사람 역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그의 죽음을 마주할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상처를 덜 받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티 대지진 때의 이야기였다. 십수 년 전에 아이티를 방문해서 그때도 시신을 수습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 케이스는 35초라는 짧은 시간 동만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졌다. 시신을 수습하기도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다 무너져있었기 때문이다. 매장할 여유도, 시간도, 돈도 없었던 현지인들은 구덩이에 시신을 던져 넣는 걸로 장례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타 국적을 가진, 나라의 힘이 있었던, 자국민들의 희생을 살폈던 나라들은 그와 같은 재난 수습 전문가를 불러서 자국민의 시신과 유류품을 수습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수습했던 5살의 코피제이드가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같은 죽음 앞에서 어떻게 수습을 하는 지는 확연히 달랐다. 죽음에도 등급이 있을까? 죽음에도 가치가 다른 것일까? 죽음조차 불평등 한 것일까?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안좋았다. 5살 아이는 소위 선진국 국민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큰 기계가 동원되고 시신을 끝까지 찾아냈지만, 대부분의 아이티 주민들은 구덩이에 한꺼번에 시신을 던져넣고 수습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물론 아이티 뿐 아니라 남아시아 쓰나미 참사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다수의 죽음현장을 수습할 때면 더욱 도드라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제목인 유류품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도 했다. 주인을 잃은 물건들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 그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럴경우, 수습된 유류품이 죽음을 인정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소중한 사람이 지니고 있던 물건으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얻기도 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의 정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이야기 한다. 죽음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가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죽음은 정해진 시간에 온다. 같은 전쟁과 참사의 현장에 있어도 죽음을 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죽음의 깊이와 불평등, 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아 주고 회복의 여정까지...그들은 세상을 떠났기에, 이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지만 남겨진 물건들을 통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금 회복을 이루어낼 수 있다. 묵직하고 어두운 이야기였지만, 저자의 손을 통해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가치를 다시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