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 돈이야, 돈.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저세상 가서 이승이 소풍이었다고 말한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그 소풍도 돈 없으면 못 가. 돈이 양반인 세상이야. "
두 번째 만나는 고호 작가의 작품이다. 제목부터 뭔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노비? 그리고 종친회? 그래서 그럴까? 유독 이 책에 나오는 성은 모두 같다. 진주 헌씨. 듣보잡인가? "현씨"는 들어봤는데..."헌씨"라? 순식간의 이름을 구질구질하게 만들어 주는 진주헌씨 종친회.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잘나가는 사업을 말아먹은 헌봉달은 결국 어머니 이름으로 된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다행히 이래저래 이야기를 해서 돌아올 어음은 3개월 이후로 미뤄뒀지만 돈이 나올 구멍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그나마 그것도 사촌 형 덕분에 융통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급박한 때에 갑자기 그는 뿌리! 가 궁금해진다. 어머니가 동네에 진품명품처럼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감정해 준다는 소식을 전해서 일까? 오래된 문서 하나를 발견한 봉달. 그리고 그 문서가 바로 공명첩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때부터 그의 뿌리 찾기가 시작된다. 진주 헌씨.
지인을 통해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는다. 그리고 "진주 헌씨"를 찾는 대자보를 붙인다. 며칠 후 한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헌신자(그나마 헌씨 중에서 제일 괜찮아 보이는 이름이다.). 자신의 조부모님의 이름이 노비문서에 쓰여있다는 사실을 본 기억이 있는 그녀는, 자신의 뿌리가 노비일까 봐 걱정이 많다. 그 이후 탈북자이자, 유일하게 방송물을 먹은 헌 총각, 어린 시절 외국으로 입양을 갔다가 친부모를 찾기 위해 돌아온 헌 자식, 과거 조폭 출신이었으나 손을 닦고 일식집을 경영하고 있는 헌 금함, 이름 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강의를 했던 헌 문학, 그리고 고2 헌 소리까지... 얼추 하나 둘 헌 씨들이 모인다. 그리고 정치인이자 다선 의원인 헌정치까지...
이들의 목적은 뿌리! 조상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어디를 뒤져봐도 헌씨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한 족보에서 헌씨 성을 가진 할머니를 발견하게 된 이들은 잔뜩 고무된다. 그렇게 헌씨 할머니의 조상들을 추적하던 중,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게 되는데...
사실 남편이 한 번씩 자신이 왕족이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거드름 아닌 거드름을 피울 때마다 내가 응수하는 말이 있다. 조류?! 알에서 나왔잖아... ᄒᄒᄒ 나는 적어도 사람이야. 우리 시조는 왕의 부마였으니까...
나름 나 역시 내 뿌리에 관심이 많았다.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방 한쪽에 벽돌 두 개 두께 되는 5권의 족보를 발견하고 흥분해서 내 이름을 찾았지만, 없었다. 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단다. 정말 크게 실망했다. (이름을 찾고 싶으면 결혼을 해야 한단다. 시가의 족보에는 며느리 이름이 올라간다고 하니... 참내!) 결혼을 한 후, 내가 무슨 파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명절마다 시아버지를 통해 들은 시가의 파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외워졌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본관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뿌리가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헌 학문의 이야기처럼, 여전히 가문과 뼈대는 큰일을 앞두고는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말에 '그런가?'하는 생각도 해봤다.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그들의 뿌리를 찾게 되는 여정에 이르러서 나름의 반전을 맛볼 수 있었다. 역시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일까? 노비라도 좋다. 뿌리를 찾고 싶다! 진주 헌씨들의 종친회 속으로 들어가 보자. 색다른 케미와 여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