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번째 서가명강의 주제는 뇌과학 중에서도 뇌 인지과학이다. 저자는 뇌인지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학습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학습? 하면 나 역시 배우는 것. 학교나 학원 등에서 배우는 학문이나 공부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뇌인지과학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학습은 지식적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인지할 수 있는 것들을 의미한다. 가령 같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 예를 들면 버스를 탈 때 하는 행동(문이 열리면 교통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거나, 빈 곳에 서 있고 내릴 때 벨을 누르는 것 같은 것)이나 가족의 얼굴, 음식을 먹는 법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 역시 학습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한다.
낯선 길을 갈 때는 잔뜩 긴장하지만, 익숙해진 길을 갈 때는 습관화된 행동들이 나온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 또한 뇌가 자연스럽게 학습한 결과이다. 하지만, 소중한 것을 잃은 후에 소중함을 알듯이 뇌의 이상 징후를 느끼게 되면 자연스럽던 행동에도 제약이 생긴다.
책 속에는 해마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해마와 관련된 연구는 HM이라는 환자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 간질이라고 불리는 뇌전증을 앓던 HM이라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해마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는데 그 이후 HM은 상당수 기억이 사라지게 된다. IQ나 다른 영역은 다르지 않음에도 유달리 과거의 일들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새로운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사건을 통해 해마가 실제 우리의 뇌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해마 시스템이 하는 서술적 학습과 기억이나 기저핵 등에서 일어나는 절차적 학습과 기억은
매 순간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마치 현대 컴퓨터 기술의 총아라는 엄청난 성능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탑재된 소형 컴퓨터를
머리에 24시간 얹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그 무게도 느끼지 못하고 그 성능도 느끼지 못한다.
뇌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할 일을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인간과 기계의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승리했다. 나 역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계의 모습에 놀라움과 함께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을 달랐다. 우리의 뇌는 바둑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데 비해, 알파고는 특정 프로그램(바둑)만을 위해 사용된다. 이것만 봤을 때도 인간의 뇌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반증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뇌의 학습과 관련돼서 저자는 동물들은 생존 본능을 설명한다. 우리의 뇌 역시 그렇다. 이로운 것을 취하고, 위험한 것을 피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렇기에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기능이 과하게 되면 소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뇌의 학습뿐 아니라 기억의 균형 역시 중요하다.
저자는 뇌인지과학에 대해 좀 더 이해가 쉽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메멘토와 같은 영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서가명강의 강점 중 하나가, 전문가로 부터 좀 더 쉽게 전문영역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인데, 덕분에 뇌인지과학에 관한 내용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