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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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과 벚꽃... 왠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람은 죽고, 벚꽃은 만발한다. 주된 장소가 장례식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실제 지명이 속속 등장한다. 상처를 머금고 살아가는 존재, 아직은 너무 젊지만 실패를 고민하는 재호와 마리의 이야기의 가슴이 아팠다.

장례식장 근처에 사는 재호. 40대에 은행 지점장을 은퇴한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사실 재호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었다. 재호는 누나와 목조르기 게임을 자주 했다. 재호는 목이 졸리면 나른하고 몽롱한 그 기분을 즐겼다. 자신이 좋았기에, 누나에게도 그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근데 누나가 깨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하얀 뱀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일 이후 부모님은 이혼을 한다. 일본 가이드였던 엄마는 재혼을 한다. 그럼에도 아빠와 종종 만나고, 일 년에 한 번씩 일본 여행을 간다. 아직도 아빠는 엄마를 못 잊었다. 누나의 사망 후, 아빠는 아죽사(아름답게 죽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었다. 20여 년 전 고베에서 한국으로 왔다가 고베 대지진에 부모를 잃고 옷을 만들며 살고 있는 히로시 역시 아죽사 멤버다.

그리고 마리. 동인천에 살기에, 장례식장 알바가 끝나는 12시면 차가 끊긴다. 택시비가 아까운 마리는 근처 맥도날드에서 첫차가 올 때까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재호는 마리에게 맥도날드 투어를 제안한다.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그 둘은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돌아다닌다. 어린 시절부터 그곳에 살았던 재호는 외할머니 집, 할머니가 했던 서점, 주변 도로들을 돌아다니며 추억을 곱씹는다. 둘은 고민이다. 언제까지 장례식장 알바만 하면서 살 수 없으니 말이다. 건물 위에 있는 거대한 동상 해머링 맨이 부러울 따름이다. 쉬지 않고 일하는 그는 그나마 정규직이니 말이다. 알바를 하면 평생을 보낼 수 없다지만, 앞이 안 보이는 취업의 길은 답답함만 자아낼 뿐이다.

그러던 중 뒷집 아저씨가 사망한다. 떠난 아내를 기다리던 아저씨는 그렇게 그리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떠났다. 아빠를 비롯한 아죽사 멤버들이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다. 아저씨의 유언대로 조촐하게... 아버지를 좋아하는 장례식장 팀장 아줌마는 아빠와 관계의 진전을 원하지만, 방해꾼이 있다. 바로 엄마. 이혼했지만 자주 만나는 재호의 부모와 달리, 한 집에 살지만 성당에 가는 시간 외에는 남처럼 지내는 마리의 부모.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왠지 모를 슬픔과 우울함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봄밤임에도, 왠지 모를 처량함과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단지 죽음을 가득 담은 장소가 배경이라서 그럴까?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하얀 뱀이 봄 밤 가득 핀 벚꽃. 생의 마지막이자 또 다른 시작인 죽음과 어우러져 또 다른 의미를 가득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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