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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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진정한 윤리는 없다. 기술이 발전이 윤리의 변화로 이어졌을 뿐이다. 흰색에 대비되는 선명한 제목의 "무엇이 옳은가?"라는 현재 우리가 가진 윤리가 얼마나 시대적 변화를 거치며 비윤리가 되거나, 혹은 비윤리가 윤리가 되는지를 속 시원히 보여준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모두가 비윤리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던 상황이 현재는 보편화된 윤리로 생각되는 걸 보면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아마 살인과 같이 여전히 절대적 윤리로 일컬어지는 것이 있지 않냐는 질문을 할지 모르겠다.(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살인 역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면(가령 비행기 사고로 낙오된 이들이 생존을 위해 죽어가는 동료의 사체 등을 먹은 사건 등) 이는 이미 절대적 윤리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아닐까?

책 속에는 다양한 윤리와 생활의 문제들이 등장한다. 가령 생명 탄생에 관한 문제나 동성애 등의 오래된 난제뿐 아니라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난민이나 AI, 가짜 뉴스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불리는 윤리까지 과연 윤리와 사회의 잣대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잣대가 있다. 개개인의 보편적 잣대들이 모여 시대의 윤리를 이룬다. 문제는, 윤리의 잣대가 무조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문화마다 윤리의 잣대는 변화되었다. 특히 요즘과 같이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대 속에서, 윤리의 잣대는 더 빨리 변화된다. 그렇기에 저자는 우리에게 여러 이슈를 통한 올바름과 그름의 기준을 세우는데 또 다른 가치인 겸손이 담기기를 권한다. 우리가 선택하고 정의라고 이야기했던 것들이 후대에는 또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조들이 세운 윤리의 잣대 역시 그 당시의 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한 기사를 봤다. 여성의 임신 중지에 대한 기사였다. 우리 사회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나라에서 낙태는 여전히 범죄로 분류된다. 하지만 태어날 권리만큼 낳고 낳지 않을 권리도 있지 않을까? 옛날이었으면 무조건 범죄라고 생각하고 귀를 막았을 테지만,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생각이 유연해졌다고 할까?

물론 옳고 그름은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할 때부터 있었다. 여전히 우리는 현재의 정의와 윤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 속에 담겨있는 상황들은 자라온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개개인의 판단의 면에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정의는 변한다. 절대적인 정의란 없다. 그렇기에 내 기준과 내 생각의 옳음 뿐 아니라 상대의 생각과 기준을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즉, 생각의 유연함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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