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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 2022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최설 지음 / 마시멜로 / 2022년 3월
평점 :
책 소개 글을 읽고 SF 소설이나 미래의 어떤 시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넘겨짚었다. 근데, 그런 내 생각은 초반에 깨졌다. 주인공인 김건수는 중학교 2학년이다. 건수는 3년 만에 아빠를 만나게 된다. 엄마와 이혼하고 어린 새엄마와 재혼을 한 아빠. 건수는 엄마와 살고 있었다. 그런 건수가 아빠를 만나게 된 이유는, 아빠가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이다.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병원. 그런 아빠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게 된 이유는 건수 역시 같은 병을 앓게 되었기 때문이다. 건수와 아빠의 병은 바로 결핵. 결핵 하면 떠오르는 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씰을 샀었다. 어릴 때는 우표라고 생각하고, 씰만 붙여서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께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우표가 아니기에 되돌아오는 건데, 마음 착한 우체부께서 배달을 해주셨다^^)
문제는 건수의 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결핵은 1차와 2차가 있다고 한다. 보통은 1차 약을 한두 달 먹으면 어느 정도 치료가 되고, 6개월 정도 더 먹으면 다 낫는데, 2차는 1차 약에 내성이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1차보다 약을 먹는 횟수나 양도 많아지고, 치료 기간도 길어진다. 근데, 2차 약도 안 듣는, 슈퍼결핵이 있다. 바로 건수의 경우가 그런 경우다. 당장 시중에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안되는 상황에 처한 건수는 그렇게 아빠가 있던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아빠를 만나고 보름 후, 아빠는 죽는다. 혼자 남겨진 건수. 엄마와도 떨어져 지내고, 아빠마저 세상을 떠나 상태에서 건수의 병은 심상치 않다. 보통 중2라는 나이는 중2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사실 소설 속 건수는 시크하면서도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아이다. 당장 수중의 돈이 얼마 안 남았다. 우연히 도둑으로 몰려 이야기를 나누게 된 병원 자판기 주인 할머니는 건수에게 6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성당에 한 달만 다니면 6만 원을 준다는데, 뭔가 석연치 않다. 서울대 3학년을 다니고 병에 걸려서 병원에 들어온 지 10년 된 형 수남 씨 또한 할머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원래 성당을 다니지 않지만, 6만 원은 건수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다. 물론 형은 6만 원에 종교적 신념을 팔겠냐고 묻지만, 건수에게는 그까짓 신념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김강희. 그녀와 건수는 참 많이 닮았다. 부모 중 한 명이 결핵환자였던 것도, 그런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2차 약조차 듣지 않는 슈퍼결핵환자라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건수는 강희가 그냥 궁금하고 낯설지 않다. 그런 와중에 3차 약이라고 부르는 신약이 개발되었고, 임상실험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미 듣는 약이 없는 건수는 이미 삶에 대해 기대가 없다. 비싼 약을 사 먹을 처지도 아니다. 그런 건수에게 신약을 임상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문제는 건수 혼자에게만... 살고 싶어 하는 강희. 건수와 강희 모두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담이 녹아 있는 책이라고 한다. 책의 저자인 최설 또한 결핵을 앓았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건수처럼 슈퍼결핵을 앓았고, 신약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의 말을 읽고 나니, 건수와 강희의 이야기가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이 가장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에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나이가 들수록 기대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책 속에 반복되는 한 줄. "건강하면, 착해지는 건 쉬운 법이야." 건강을 잃은 사람들의 말이 라서 그런지, 와닿지 않는 이유는 아직 건강이 내게는 남아있어서일까? 아님 내가 착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기대되는 방학이, 누군가에는 길게 느껴지는 방학이, 누군가에는 지겹고 때론 짧게 느껴지는 것은 처한 상황의 차이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