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 - 위드 코로나 의사의 현실 극복 에세이
이낙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의사들이 쓴 책을 자주 접할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의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선입관들이 있었는데, 책 덕분에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실 누구나 직업을 갖기 전에 적성이나 벌이 등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기 마련이지만, 유독 의사나 종교인, 교사 등에 대해서는 직업을 가지게 된 계기가 유독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생명을 살리겠다는 엄청난 마음을 가지고 의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 큰 이유 중 하나가 본고사를 안 봐도 된다는 사실이었다니...!(물론 나는 그 세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의대에 진학하려면 사실 공부를 많이 그리고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이었다는 사실이 마냥 부럽기도 했다.) 물론 의대에 진학하고, 학업을 병행하고 인턴과 전문의 과정을 거칠 때까지만 해도 워낙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과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무난한 성격 덕분에 어떤 고민도 없이 살았지만, 막상 의사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빠름을 탑재하고 있어야 하는데, 워낙 느긋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수련의 기간을 거쳐 특유의 느긋한 천성이 빠릿빠릿하게 변화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글은 큰 울림이라기보다는 피부에 와닿는 친근함과 따뜻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의사는 단지 의학 지식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기본 바탕으로 수많은 경험과 노력으로 수련이 된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깊이 있게 다가왔다.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있었지만,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던 부분이 있었다. 하루 사망진단서를 3번을 쓰고 있었던 날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세 번째 사망진단서를 쓰던 중 중환자실에서 유족들이 우는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순간 자신의 모습에 몸서리치게 놀란 저자는, 같은 공간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런 감정 없이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고 한다. 가슴이 차갑게 식어서 그저 생명을 일로 치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의사 생활을 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생각한다는 저자의 글이 내게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사실 나는 의사가 아니기에 의사의 입장보다는 환자의 입장에 설 때가 많았고, 나 역시 병원에 가서 환자(혹은 보호자)의 입장에서 가장 서운했을 때가 의사들이 병을 너무 쉽게(때론 아무것도 아니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 때다. 특히 아이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그런 기분이 드는 의사는 다시 찾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런 환자들의 마음에 대해 저자는 솔직한 이야기를 전한다. 워낙 중증의 환자들을 자주 보다 보니 의사의 입장에서 경증의 환자들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생각할 정도로) 가볍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자기성찰과 반성을 한다. 그런 마음을 솔직히 표현해 주니 조금은 오해가 풀리기도 했고, 의사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이해가 되기도 했다.

초심을 간직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나 역시 지금 직장을 13년째 다니고 있는데,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는 마음이 많이 변했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환경에 오래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해이해지는 것 같다. 의사 역시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저자처럼 첫 마음을, 깨달았던 마음을 간직하려고 노력하는(조금의 실수가 환자의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처럼)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만 2년이 넘는 코로나 시국을 지내며 누구보다 고생한 의료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 덕분에 끔찍한 시간들을 무사히 넘기고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