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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방앗간의 편지
알퐁스 도데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평점 :
알퐁스 도데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별"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별이라는 작품의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목가적이고 부드러운 작품 속 분위기가 기억나는 걸 보면 완전히 잊히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풍차 방앗간의 편지라는 제목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소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내용 파악도 없이 만난 첫 장에서 저자의 이름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약서 이야기가 나오며 시인인 도데 씨라는 이름에 순간 산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소설이라고 들었는데, 나오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다행이라면, 읽고 나서 다시금 머리말을 읽으니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책을 처음 폈을 때만 해도 낯설 디 낯선 이름들이 이제는 익숙해졌으니 말이다.
알퐁스 도데의 25편의 단편소설이 풍차 방앗간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작품 해설을 보니 그동안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이 일부 출판된 경우는 있었지만, 이 책에는 전편이 다 수록되어 있다고 하니 더 반가웠던 것 같다. 사실 별 외에는 알퐁스 도데의 작품을 만난 적이 없는지라, 이번에 만난 작품들을 읽다 보니 은근 유머와 위트도 겸비한 작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그 짧은 소설 안에 생각할 여지 혹은 풍자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그런지 꽤 오래 기억이 남을 것 같다.
여러 편이 기억에 남는다. 제목만 봐도 피식 웃음이 나는 작품도 있고, 왠지 심각해지는 작품도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은 교황의 노새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관용구처럼 사용하는 한 문장에 있다.
"저 사람! 조심들 하게! 7년 동안이나 뒷발질을 벼르고 별렀던 교황의 노새 같은 사람이니까!"
바로 이 이야기의 포커스는 교황의 노새와 7년 그리고 뒷발질에 있다. 옛말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한이 쌓이고 쌓여서 있을 수 없는 일까지 만들어 낸다는 뜻이 담겨있지만, 한편으로는 "한"이라는 것. 억울함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감정도 담겨있다. 노새 역시 그렇다. 교황이 애지중지하는 보물 2호(1호는 샤토뇌프 포도밭이다.)인 노새. 교황에게 점수를 따보겠다고 한 아이가 등장한다. 이름은 티스테 베덴이다. 교황이 노새를 아낀다는 사실을 파악한 티스테는 교황 앞에서 노새를 무척 챙긴다. 하지만 교황이 없어지면 상황이 다르다. 포도주 주발에 설탕과 향료를 듬뿍 넣은 특식을 늘 노새에게 갖다주던 교황의 업무를 대신하게 된 티스테는 친구들과 자신이 노새의 특식을 먹어버린다. 또한 높은 곳에 노새를 끌고 올라가기도 한다. 물론 교황에게는 노새가 스스로 올라갔다는 거짓말을 하고 말이다. 교황의 노새답게 화를 억누르던 어느 날, 쌓이고 쌓인 화를 담아 뒷발질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노새. 하지만 티스테는 교황의 눈에 띄어 나폴리 궁정으로 떠난 후였다. 그렇게 7년간 화가 쌓인 노새 앞에 드디어 티스테가 나타나는데...
정말 한참을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람도 한을 품는데, 한을 품은 노새의 복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발견했으니 말이다.
책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성당과 관련된 분위기의 이야기가 상당수 등장하는데, 알퐁스 도데가 살던 당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목가적 분위기가 녹아있는 작품들뿐 아니라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들도 상당수 있다. 실제로 풍차 방앗간의 편지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지만, 방앗간과 관련된 작품은 있다. 알퐁스 도데가 마음에 들었던 풍차 방앗간을 소유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작품을 통해서 만난 방앗간은 후대에 알퐁스 도데 기념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만난 알퐁스 도데의 작품 속에서 한참을 빠져있었던 시간이었다. 그의 작품 25편을 함께 만나서 더없이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