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 김누리 교수의 한국 사회 탐험기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극단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총과 칼만 겨누지 않았지 죽일 듯이 미워하고, 덮어놓고 반대하는 모습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저자의 말처럼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적을 이루어낸 우리나라가 왜 스스로를 헬 조선이라고 부르고, 이민을 생각하는 국민이 과반수를 넘어갈 정도로 끔찍한 나라가 되었을까? 과연 우리에게 스스로 자생할 힘이 있을까?

이 책은 저자인 김누리 교수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을 주제별로 묶어서 담아냈다. 사실 10여 년 가까이 된 글이 과연 얼마나 생명력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도 많은 것이 바뀌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글은 지금에도 딱 맞았다. 아니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더 극단적인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에 일어난 사건이 현재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이 책의 제목을 읽으며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내심 궁금했다. 절망할 권리가 없다면, 희망을 가지라는 뜻일까? 근데 저자는 이 책을 시작하며 볼프 비어만의 말을 인용했다. "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거기에 한 마디를 더했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극단적인 단어들이 사용되긴 했지만, 충분히 저자의 의도는 이해가 된다. 희망을 말하기 어렵지만, 절망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저자의 글 속의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실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만 가득해진다. 그럼에도 저자는 절망에 대해 개자식이라는 표현을 쓰며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너무 처참한 절망의 상황을 거닐고 있기에 차마 절망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뜻이 아닐까? 그냥 버려두고 절망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200만의 촛불집회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 시간과 노력의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다시 반복되는 듯싶다. 끔찍한 과거의 잘못을 현재도 계속 곱씹으며 그렇게 죽어간 유태인의 이름을 집 앞에 새기는 독일의 걸림돌 이야기를 읽으며 심히 놀라웠다. 우리 같으면 내 집 앞에 그런 걸림돌을 세우는 것에 반대를 하다못해 고소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십여 년 전의 글이 마치 어제의 글처럼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몰라서 일까, 알면서도 방관해서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