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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평점 :

낯선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때면,
예측 불가능한 이 시간들이 너무 느리게 가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서 현재로 성큼성큼 걸어온 거나 다름없었다.
삶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알버트는 동화 속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마음을 먹은 알버트는 오두막에 있는 방명록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아내 에이린을 처음 만났던 19살 때다. 당시 1살 연상의 애인 마리안네가 있었던 알버트는 대학 교정에서 우연히 에이린을 마주친다. 사실 둘은 아무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서로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어도 교정에서 서로를 찾느라 분주했다. 물론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다시 만날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린은 알버트에게 드라이브를 제안한다. 아주 긴 시간 동안의 드라이브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화 속의 오두막을 마주한다. 주인 몰래 들어간 오두막에서 그들은 또 다른 추억을 쌓게 된다.
시간이 지나 둘은 결혼을 했고, 둘 사이에서는 크리스티안이라는 아들이 태어난다. 불타오르는 사랑도 권태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듯이 그들의 결혼생활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바쁜 개인의 일정과 조금씩 식어가는 감정은 그들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다 신문에서 그 오두막 매매에 대한 광고를 보게 된다. 알버트와 에이린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오두막으로 향한다. 아들에게는 그동안 비밀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 그곳에서 그들은 옛 추억에 잠긴다. 나룻배를 타고,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던 에이린의 모습, 몰래 들어간 오두막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침대에 누워 피로를 풀었던 기억까지... 오두막 구입을 통해 그들은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아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옛 애인인 마리안네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안네와 옛 관계를 이어간다면 크리스티안과 에이린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알버트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을 한 그는 유서를 남기기로 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 앞에서 알버트는 분노를 느낀다. 고작 왼 손가락 몇 개를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려는 것일까?
죽음 앞에 어쩔 수 없는 좌절과 분노 그리고 남겨질 가족들과 그들과의 추억이 책 속에 담담하게 담겨있다. 사실 죽음은 담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알버트처럼 갑작스럽게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그 충격은 더 클 것이다. 알버트가 간 오두막은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곳이다. 알버트는 그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자 했다. 가족에게 남기는 유서를 통해 그는 삶과 사랑을 생각할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죽음은 참 무섭고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그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여전히 어둡고 무섭다. 그럼에도 공포로만 남겨둘 수 없는 것이 죽음인 것 같다. 책을 통해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