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비가 참 많이 오는 한 해인 것 같다. 여름 하면 태풍, 장마, 소나기 등의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겠지만 유난히 비로 인한 피해가 많았던
올해는 몇 년 전 폭염의 때와 같이 꽤 오래 진한 기억에 남는 여름이 될 것 같다. 한참 비를 만나고 있던 여름에 만난 책이어서 그런지, 유독
여름과 더 잘 어울리고, 이 날씨 마큼이나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된 수호.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의 고민을 덜어주려다 오히려 믿음을 잃고 헤어진
민.
수호는 신용불량인
자신의 명의로 무엇을 할 수 없었기에 길에서 주운 신분증 박선우로 살고 있다. 다행이라면 선우는 대학생이고, 외국에 나가 있다는 것? 물론 그
또한 범죄이기에 선우의 삶에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삶을 살기로 한다. 선우의 이름으로 이력서를 내고, 선우의 이름으로 급여를 받을
통장을 개설하는 정도에서 말이다. 진짜 선우가 아니었기에, 수호는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다. 그저 일과가
끝나면 아버지의 가구점에 들러 한숨 돌리고 생활하는 정도에 만족할 수밖에...
민은 나름 큰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후배인 종우와 사내연애를 했고, 그렇게 둘은 결혼을 약속한다. 근데 종우가 하는 일에 뭔가 문제가 생긴다. 기계부품 제조사
C사의 조작된 회계감사보고서로 인해 구조조정과 해고, 파업까지 이르른 것이다. 물론 파업 과정에서 상당수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종우는 이
일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종우는 이 사태에 대한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고자 한다. 민은 그런 종우가 걱정이 되어 종우가 가장 믿는 선배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선배는 그런 종우의 편이 아니라 이 모든 사태를 회사에 보고하기에 이른다. 결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민은 그래도
종우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종우는 C사 옥상에서 목숨을 던진 해고 노동자의 사건을 본 후 종우는 무단결근을 시작하고, 그렇게 결혼식도
종우와의 관계도 끝이 난다.
종우와의 일 이후 민
또한 회사에 사표를 낸다. 그렇게 회사를 나온 여름의 끝에서 민은 수호의 가구점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은 그 이후 민에게 위로의 장소가
된다.
선우로 살게 된 수호는
쇼핑센터에 원서를 넣고 합격하게 된다.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수호를 좋게 본 담당자는 옥상놀이공원 직원으로 수호를 추천하게 된다. 수호는
시급이 1,150원 많기에 그 일을 지원한다. 옥상놀이공원 책임자 연주와 그렇게 수호는 놀이공원을 지킨다. 열심히 사는 연주. 그런 연주를 보며
수호 또한 여러 생각에 빠진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수호는 지갑을 놓고 왔다는 연주의 전화를 받고 지갑을 들고 연주가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연주에 지갑에는 현금이 없다. 그 순간 수호는 연주에 지갑에 들어있는 카드를 가지고 돈을 출금한다. 생각 없이 100만 원을
인출한 수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두 인물의 겹쳐질 듯
겹쳐지지 않는 삶을 통해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기도, 어쩌면 좋은 선택을 했다고 여겨진 상황 속에 내팽개친 그들의
삶은 비만큼이나 찝찝하고 꿀꿀하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좋을지 나조차 모르겠는 민과 수호를 보면서 뜨겁고 찝찝한 이 시기가 속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계절은 돌고 돌지만 민과 수호의 삶에 가득한 여름은 과연 지나갈까? 여름이 지났을 때 그 둘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날씨처럼 왠지 모를 감정에 한참 빠져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