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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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동물원으로 유명한 SF 작가 켄 리우의 단편 모음집이다. 내용만큼 제목도 신기하다. 단편소설집답게 책에 수록된 한 작품의 제목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표지를 한 장 넘기면 오묘한 마블링 색감이 가득 섞여있는 두 번째 표지가 등장한다. 아마도 SF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한 삽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책 안에는 12개의 단편이 담겨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작품이 두 개 있었다. 호(弧-활)라는 제목의 소설과 곁이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다. 둘 다 가족을 매개로 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SF라는 장르와 가족(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어울릴까 내심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고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라 신선하기도 했다.

나 레나 오젠과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호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첫 부분에 등장한다. 그리고 눈을 자극하는 한 줄의 문장이 등장한다.

'맏아들을 낳았을 때 레나 오젠은 열여섯 살이었다.

그로부터 100년 후, 오젠의 막내딸이 태어났다.'

16살의 레나는 남자친구인 채드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다. 곧 예일대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자 부유한 집 아들인 채드는 레나의 임신 소식이 달갑지 않고, 그는 그렇게 그녀를 떠난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라고 성화였지만, 그는 그 누구에게도 아들 찰리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싱글맘으로 아이를 돌보던 나는 우연히 만난 제임스라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친정집 앞에 아들 찰리를 버리고 그를 따라 떠난다.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지 않아. 서로를 위해 곁에 있기를 원하는 거지."

그와의 5년을 지낸 어느 날, 처음 왔을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진 제임스. 그리고 레나는 평생의 일을 찾게 된다.

보디워크스라는 회사로 이 회사에서는 플라스티네이션 과정을 통해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시신을 해부하고 열과 가스 처리를 해 고분자 화합물 조각상처럼 만든다. 물론 모세혈관, 신경, 근섬유 한올까지 보존된 채로 말이다. 아트디렉터인 에마에게 인정받는 레나는 그곳에서 10년여를 일하게 된다. 그리고 에마가 떠난 다음 날 그녀는 새로운 아트 디렉터가 된다. 하지만 한 아이의 시신을 플라스티네이션 해달라는 고객의 요청을 받고, 레나는 15년 전 자신이 버리고 온 아들 찰리가 생각난다. 결국 그녀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표를 제출하려던 그녀를 막아선 것은 보디워크스 창립자 로버트 윌러의 아들인 존 윌러였다. 그리고 레나와 존은 영원히 살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재생 신약을 개발한 존과 레나는 자신들에게 시현하게 되고, 레나는 평생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결과가 잘 나왔어요." 존이 말했다.

"당신의 신체 나이는 이제 서른 살이에요. 정기적으로 관리만 해 주면 지금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하지만 그의 파트너인 존은 암에 걸리게 되고, 그동안 지켜온 젊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존을 떠나보낸 레나는 그때야 얼려놓은 존의 정자를 통해 딸 캐시를 낳게 된다. 캐시를 임신한 어느 날, 만나게 된 한 남자.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16살에 큰 아들 찰리를, 56살 되던 해 둘째 딸 캐시를, 그리고 100세가 되던 해 낳은 막내 세라까지...

그녀는 변함없는 모습을 가지고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앞세우게 된다. 자신이 낳은 아들 찰리까지도 말이다.

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그 옛날 진시황 시대부터 장수를 넘어 영생은 인류의 가장 큰 소원 중 하나였다. 미래 그 영생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늙지 않게 되었지만(물론 그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기에, 영생 또한 가진 자들만의 것이라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여전히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죽음을 넘어서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은 불행을 벗어날 수 없었다. 켄 리우의 단편집에는 이렇게 생각해볼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다. 생활은 발전하고, 훨씬 윤택해지고 편해졌지만 편리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그 무엇. 그 무엇을 향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호 뿐 아니라 결에서도 그런 감정은 만날 수 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직접 가서가 아닌, 원격을 통해 한다는 설정이 독특하긴 했지만 말이다. 로봇을 통해 직접 어머니를 만지는 모습이 왠지 모를 불쾌감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어머니의 병실을 지켜보고, 간접적으로 체험 아닌 체험을 하게 되는 모습들이 왠지 각박하고 메말라 보이기만 했으니 말이다.

소설 속 이야기 하나하나 담고 있는 생각들이 있다. 생각지 못한 기술의 발전이 또 다른 감정적 결핍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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