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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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전파되면 건축에 반영된다.

 모 프로그램에 등장한 유현준 교수를 보고 처음으로 건축 관련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건축이나 인테리어 쪽은 워낙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내게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예 관련 이야기나 티브이 프로그램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당시 프로그램에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본 후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접한 유현준 교수의 두 권의 책(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덕분에 건축과 공간에 대한 내 생각은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 또한 건축이 그저 멋있는, 편한 집을 짓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장르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공간이 만든 공간 역시 그런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잘 녹아있는 책이다.

그는 책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반복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지 않나?) 건축은 건축만 따로 놓고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건축 안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 삶의 형태, 문화, 가치관 등 우리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형의 것들이 가득 녹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의 건축을 보게 되면 그들의 삶을 읽어낼 수 있다.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참 많은 역사와 건축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내용은 바로 밀 농사와 벼농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글이었다. 밀과 벼는 년 강수량을 가지고 구분이 되는데, 어떤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 집단에 대한 생각에 큰 차이가 있었다. 가령 벼농사의 경우 모내기를 할 때 줄을 맞춰 모를 심어야 하기에 많은 일손이 필요한 데 비해, 밀의 경우 그냥 밭에 뿌리는 식으로 모내기가 끝나기 때문에 굳이 일손이 필요하지 않다. 이런 문화가 점점 뿌리를 내려서 밀 농사 지역에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벼농사 지역에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벼농사 지역은 일손으로 인한 공동체의식이 강하고, 관계를 중시하기에 주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하지만 밀 농사 지역은 자신의 삶을 중시하고, 타인이 자신의 삶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기한 것은, 그런 농사적 성격이 건축물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동양의 경우 건물 외관보다는 안에서 밖을 보는 풍경에 더 집중하여 건축이 이루어졌다. 건물 그 자체보다는 어우러짐에 더 집중했다. 반면 서양의 경우는 건물 자체 그리고 건물을 중심으로 한쪽 방향으로의 건축에 집중했으며, 벽을 중심으로 웅장하고 막혀있는 건축물이 많다. 서양의 건축물이 벽을 중심으로 외부와의 공간적 경계를 둔 데 비해, 동양의 건축물은 기둥을 중심으로 사방이 뚫려 공간의 접근성이 좋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와 생활환경이 건축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방증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서양과 동양의 건축과 생활환경이 명확한 차이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를 따라 공간 여행을 하다 보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책 한 권으로 인류의 처음부터 앞으로 먼 미래까지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참 기묘한 경험이었다. 저자의 설명과 함께 공간과 건축의 변화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거대한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연결된 이야기에 가닿게 된다. 함께 들어있는 사진과 그림들 또한 흥미를 자아낸다.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축은 그 나름의 변화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졌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라는 속담이 건축과 공간에도 적용된다.

책을 읽으며 만났던 건축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통해 또 어떤 변화와 갈등 그리고 화합이 등장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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