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아이들 생각학교 클클문고
정명섭 지음 / 생각학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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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매체를 통해 봤던 이야기가 있다. 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태어난 한 여성이었다. 자신의 출생에 맞춰 아버지가 광주로 들어오다 희생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가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아서 그동안 죄책감이 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나 역시 그 이야기를 보며,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 아버지는 딸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죽어가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이야기에 공감이 갔던 이유는, 내 배우자 역시 80년 5월 18일에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단지 광주가 아닌, 광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았기에 비극이 없었던 것이겠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학창시절 5.18을 접했을 때, 폭도까지는 아니었어도 생각보다 비중 없이 지나친 것도 사실이다. 그저 날짜 정도만 기억했지 실제 이야기를 명확하게 들어본 적은 없었다. 나 역시 전라도라는 지역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고, 선욱이 정도의 적대적 반감은 아니지만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 또한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직접적으로 전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생활한 적이 없었음에도 이런 편견이 생긴 이유는, 선욱이처럼 주변의 이야기가 먼저 내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리라.

"야, 그냥 장난친 건데 무슨 말을 그렇게 삭막하게 해."

"삭막하긴.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두고, 약 올리고 놀리는 인생이 더 삭막한 거지."

책 속 억울한 누명으로 30일의 출석 정지를 당한 선욱이와 5.18 민주화운동이 곡해되고, 잘못 알려져서 폭도로 몰린 그들의 억울함이 서로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전라도에 대해 극단적인 편견을 가진 한혁의 무리에 끼고 싶은 선욱은 담임교사가 일명 일곱시(전라도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어)라는 사실을 한혁에게 알린다. 얼마 전 순천에서 이사 온 민병이를 데리고 후문으로 오라는 한혁의 말에 선욱은 민병을 데리고 후문으로 향하지만, 한혁이 저지른 일을 졸지에 덮어쓰게 된 선욱. 선욱의 엄마는 선욱을 자신의 고향인 후남 마을의 외삼촌 댁으로 보낸다. 마을 입구에서 5.18 위령비를 보게 된 선욱은 불만에 가득 차게 되고, 몰래 위령비를 훼손시킨다. 그동안 유튜브를 통해 5.18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가진 선욱은, 마을 사람들 모두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마을 사람들을 교화(?) 시키려고 한다. 외삼촌과 논쟁 중 지희라는 아이가 주말마다 마을에 내려와 5.18기념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지희를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5.18에 대한 실제 이야기와 증거를 듣게 되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은 모두 진압되었고,

광주만 남았다는 거였지.

그래서 진압군을 광주로 보낸 거야."

"광주만 시위한 게 아니라, 광주만 남았다......"

...

그 얘기는 시위가 과격했기 때문에 진압군이 투입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과격하게 진압할 생각이었다는 뜻이기도 해."

이 책을 읽기 전과 후가 참 많이 달랐다. 나 역시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보며, 5.18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계기를 마련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는 울분에 차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또 잊힌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5.18민주화운동이 올해로 40년이 된다.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고, 그들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하나둘씩 알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5.18을 대하고 이야기할 때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완전한 "진실"에 가닿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감정, 세대 간 혐오도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서부터 그런 편견이 생긴 것일까?

한두 명만 만나보고 전체를 본 듯 이야기하는 것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은연중에 전라도라는 지역 사람들에 대해, 5.18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또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책을 통해 5.18을 넘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되고 왜곡된 편견이 얼마나 많은 지 다시금 깨닫고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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