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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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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아픔을 느낄 만큼 기쁨을,
헤아릴 길 없는 기쁨을 주는 것이 가능할까요?
질투로 인한 아픔을 안겨주면서 동시에 자신도 상처를 받는다는 의미예요.
그냥 실험을 하듯이, 드물게 느껴보는 감흥처럼 기쁨과 고통을,
똑같은 크기의 기쁨과 고통을 뒤섞어서 느끼는 거랄까?"
빨간색 표지가 너무
강렬하다. 작품을 만나기 전부터, 표지를 통해 그녀가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소설을 접한다면 표지보다 더 강렬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는
레베카와 새 라는 작품으로 서스펜스 쪽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라 한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작가가 상당히 한정적이기도 하고,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관계로 내 경우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작가를 마주하게 되었다.(물론 레베카와 새 또한 읽어보지 못했고,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도
잘 몰랐다.)
이 책안에는 그녀가 쓴
13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데, 이 책 중 두 번째 등장하는 단편이 "인형"이다. 놀라운 것은 이 책에 등장한 작품은 그녀가 25세 이전에 썼다는
사실이다.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상당히 유혹적이기도, 선명하고 진한 이야기를 닮고 있기도 하기에 과연 25세 이전에 이 모든 걸 경험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녀는 나에게 하나의 광기, 집착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13개의
작품 중 이 책의 제목과 동일한 "인형"이라는 작품에서 상당히 큰 인상을 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리베카를 우연히 만나고 사랑에 빠진 나는
리베카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찾아 나선 나는 결국 그녀를 만나게 된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그녀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모른다. 결국 용기를 내어 리베카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리베카로부터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받는다. 그날부터 나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리베카 생각에 빠져 지낸다. 혹시나 그녀 주위에
다른 남자가 얼쩡거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할 정도이니 말이다.
내 친구 중에 피아노를
전공한 친구가 있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 중 가장 예민한 사람은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악기 보다 현악기는 스스로
음을 집어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다른 음악을 하는 사람보다 귀도, 성격도 예민해진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세밀하고 높은 음역대를 만지는
바이올리니스트는 특히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단다.(물론 사람의 차이가 있겠지만,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 수 있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리베카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감정을 즉흥적으로 드러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그녀이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사람일 테고, 나쁘게 말하면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녀를 사랑하는 나는 그녀의 행동에 기분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이다.
그녀에게 영향을 받은
건지, 리베카 방에 있는 인형 줄리오에 대해 왠지 모를 불쾌함을 느낀다. 기분 나쁜 눈빛과 얼굴을 가진 줄리오가 그녀와 함께 있는 게 너무
싫다. 근데 그게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는지, 그녀 또한 줄리오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를 밀어낸다. 방금 전까지 열정적인 키스를 뿜어대던 그녀가
말이다.
과연 그녀에게 인형
줄리오는 내가 생각한 바로 그런 의미였던 것일까?
듀 모리에 가 이
작품들을 쓴 때가 1930년대라고 한다. 지금 읽어도 묘하고, 강렬하고, 요즘 세대와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작품들임을 알 수 있다. 지금
보기에도 파격적인데, 당시라면 얼마나 파격적을 넘어 쇼킹했을까? 아마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는걸 보니
그녀의 작품이 왜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 알 듯하다. 또한 후에 발표된 작품들을 미리 경험했다면, 뚜렷한 비교가 될 텐데 나의 경우 이
책을 처음으로 작가를 만났기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