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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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수가 잘 놓였어도 피가 묻으면 쓸모 없어진다.

홍주는 잘못도 없이 한순간에 피 묻은 자수보 같은 팔자가 된 것이다.

버들은 여자 운명이 고작 자수보 같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혹시 친구가 시집가는 것을 싫어했던 자기 때문에 부정 탄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훈장이자 의병이었던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집안에 외동딸인 버들은 부산 아지매에게 포와(하와이)의 혼처 이야기를 듣는다. 포와에 가면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버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큰 매력이었다.

그렇게 버들과 결혼 두 달 만에 과부가 되어 돌아온 홍주, 무당집 손녀 송화는 그 먼 타국으로 결혼이민을 떠난다.

부푼 꿈을 안고 간 포와에서의 생활은 버들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 같이 온 다른 친구들의 남편이 30살 이상 차이 나는 할아버지 벌인데 비해, 버들의 남편은 사진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인 서태완은 처음부터 왠지 버들을 냉냉하게 대했다. 낯설고 점잖아서라는 버들의 생각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편 서태완에게는 마음을 준 달이라는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시집온 다음날부터 버들은 포와의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아무런 기반 없이 이주해 온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탕수수 농장에서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일하는 것. 그리고 여자들은 빨래 혹은 혼자 근무하는 사람들의 밥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살 때 워낙 못 입고 못 배우고 살아서 그런지, 먼 이국 땅에서의 생활은 무척 힘들지만 비교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내 나라 조선은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지만 조선의 소식을 듣고 있고, 일제의 악랄한 괴롭힘 속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동포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데 십시일반 돈을 모으기도 하고,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여성들은 조각보를 만들고, 수를 놓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승만파와 박용만파로 나누어 벌어진 갈등은, 조선에서만 아니라 포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박용만을 지지하는 버들의 남편 서태완과 반대편에 선 이웃들 속에서 심심찮은 잡음이 흘러나온다.

버들은 그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남편이 가지고 있는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국을 되찾기 위한 운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설령 남편이 가족들을 등한시하고, 박용만대장을 따라 중국으로 떠났을 때조차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젊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버들은 홍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송화를 바라보았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모든 게 낯설기만 한 그곳에서 그녀들은 서로가 서로의 가족인 양 그렇게 살아간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매일 주어진 삶을 묵묵히 헤쳐나가면서 말이다.

하와이 이주 노동자들의 삶이나 그들의 독립을 위한 노력들에 대해 스쳐 지나가듯 봤던 한 줄의 교과서 속 문장이 이렇게 가득한 텍스트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역사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소시민들과 의병들과 민초들과 독립운동가들.

그 멀리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세 여자의 삶의 고난과 팍팍한 눈물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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