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유로 하루에
100단어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미국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실사판이라 할 수 있는, 이 극도의 상황을 읽으며 코로나19 사태만큼이나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왼쪽
팔목에 카운터가 채워진다.
단어 하나를 이야기하면
카운터의 숫자가 등장하고, 100단어를 넘어서는 순간 전기 충격이 가해진다.
말도 안 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모든 국민은 교리 아래
굴복해야 한다는 논리 아래 순수 운동이라는 운동이 한 목사에 의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운동에 의해
여성의 모든 권리는 남자에게 귀속된다.
(지극히 편협하고
비논리적이고 문자 그대로라서 읽는 내내 화가 났다. 아무리 소설적 상황이지만, 너무 종교적 비약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여성들은 직업을 잃고,
생각도 잃고, 말도 잃는다. 아니 정부가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한때 영향력 있는
언어학자 진 베클렐런박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그녀가 이룩한 모든 연구의 결과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녀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집안에
갇혀 100단어의 말만 하면서 살게 되었다.
3명의 아들과 남편은
너무 편안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와 딸 소니아는 100단어의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정부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종교학을 무조건 수강해야 대학에 진학을 할 수 있게 된다. 근데 그 종교학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지금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
대놓고 남녀 차별을
가르치고, 여성의 존재를 발톱의 때 만큼으로도 안 여기는 상황을 주입한다.
그러던 중, 대통령의
형이 사고를 당해 뇌 중추를 다치게 된다.
나라에서는 언어학의
권위자이자, 실어증 치료제를 개발했던 진 베클렌런 박사에게 치료를 제안한다.
사실, 말이 제안이지
강제적으로 팀을 꾸려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결국 진은 치료를
수락하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반전이 숨어있었다.
있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소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단지 소설 속 상황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방법만 다를 뿐 여전히 여성의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여성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쩌면 그렇지 않은
상황을 겪었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