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장폴 뒤부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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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정은 저 멀리 아주 어렸던 시절로부터 피어올라 끝없는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아버지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건 아니었다.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의식함으로써

한층 더 사무쳐오는 아픔이었으니까.

그것은 이제 이 지상에 나 홀로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홀로 맞서 싸워야 했다.

가족들이 연달아 자살을 택한다.

할아버지. 외삼촌. 어머니. 아버지까지...

과연 이 가족들의 자살은 사랑하는 가족이 떠난 데서 오는 우울증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의사인 아버지에 이어 의사면허를 취득한 폴 카트라킬리스. 하지만 환자를 진료한 적 없는 의사라니...

그가 심취해있는 것은 펠로타 경기 뿐이다. 마이애미 프로선수단에 속해있는 그는 아버지 아드리앙과 연락을 끊고 산지 4년이 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날아온 편지 안 사진에는 77777마일이라는 숫자의 주행기록계 사진 한 장과 자동차의 측면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다. 사인은 자살...

근데 아버지의 자살은 뭔가 석연치 않다. 스카치테이프로 안경을 동여매고,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턱을 동여맨 체 자신이 진료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단다.

이로써 폴에게 남은 가족은 하나도 없다.

의사이자 한때 스탈린의 주치의였다는 할아버지 스피리돈의 자살.

어머니와 남매 이상의 이상한 우애를 보였던 외삼촌 쥘의 자살.

외삼촌을 보내고 얼마 안 돼서 차 안에서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 안나.

그리고 아버지 아르리앙까지...

가족들의 연달은 자살 때문에 위축되어 있을 듯한 이 가족의 분위기는 의외로 이상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날. 아버지는 별 미동 없이, 진료도 보고 저녁식사를 하며 평소와 같이 지낸다.

폴 또한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일어난 일이 일어난듯한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아버지가 사망할 시간에 물에 빠진 개 왓슨을 건졌다는 이상한 이야기만 떠올릴 뿐...

과연 폴은 이 자살의 모습을 상속하지 않고 삶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특이한 행동을 일삼던(진료 시 팬티만 입고 진료를 하는 괴상한)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며 왜 제목이 상속인지, 왜 아버지는 그런 기이한 행동들을 했는지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남겨진 가족에게 큰 상처가 된다. 그리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드러나기도 한다. 마지막에 남겨진 아들 폴은 가족을 앞서 보내며 그들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상속받는다.

그리고 그 상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앞에 다시 그 고통의 구렁텅이로 강제로 끌어들여진다.

읽는 내내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 가족의 자살 이야기가 겹쳐졌던 것은, 책 속에 등장한 가족들의 이야기와 닮아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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