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웰빙이나
힐링만큼이나 이슈가 되는 단어가 있다. 일명 웰다잉(well-dying).
과연 죽음과 행복이
어울리는 단어일까?
죽음은 헤어짐, 이별,
슬픔, 고통 등과 더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죽음과 행복이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집안
환경(어머니+ 농장) 때문에 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모습의 죽음을 접했다.
물론 그게 어느 정도
트라우마를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30대 말에 죽음을
생각할만한 고통스러운 병을 앓으며 죽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죽음 하면
떠오르는 몇 장면이 있다. 죽음의 첫 기억은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신 외숙모였다.
사실 외숙모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외숙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사고를 당한 외삼촌의 병원에 갔다가, 시골로 내려갔다. 그리고 큰이모가 외숙모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자고 병풍을 걷었을 때,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가신 외숙모의 얼굴이 보였다. 방바닥에는 투명한 비닐이 깔려
있었다.
(병원으로 옮기지도 못하고
현장에서 돌아가셨기에 바로 집으로 모셨던 것 같다.)
당시의 죽음은
무섭기보다는, 왠지 외숙모가 자고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몇 번의 죽음을 더 접하며 내 생각은 점차 죽음이 공포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말이다.
죽음을 앞둔 이를 보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방문객 그 이상이 아니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전체 혹은 일부 과정은 닫힌 커튼 너머의 세상이
되었다.
과거에는 죽음의 과정들을
집에서 처리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도 죽음을 접하고 알아갈 수 있었는데 반해, 현재는
죽음의 모든 과정들을
병원이나 그 밖의 전문 업체에서 하기 때문에 저자의 말처럼 죽음의 방문객의 역할 밖에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단지 간접적인
죽음의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다. 타인의 죽음이 아닌, 나의 죽음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여러 물음들을 통해 내가 진정
원하는 죽음의 모습을 생각해보길, 내 죽음 이후의 과정(장례식)들은 어떠했으면 좋을지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갖도록
조언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나뿐 아니라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앞에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죽음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며, 그때 나 죽음의 상태를 정할 수는 없지만 죽음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미리 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죽음은 두렵지만,
누구에게나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죽음은 리허설이 없다.
그저 본 방송만 있을 뿐... 그리고 그 본 방송은 언제일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 번은
생각해보고, 고민해봐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가능하다면 나의 죽음의
모습들을 미리 생각해보면 좋겠다.
장례식의 모습이라던가,
연명치료 같은 의료적인 행위들이라던가, 내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함께 하고픈 사람들이라던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죽음은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그럼에도 내 죽음이 조금 더 내가 원하는 행복한 죽음이 되도록 시간을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