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재난관련
작품을 좋아한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가면을 쓸 수 있지만, 최악의 상황이 되면 인간의 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재난이라는 상황은 인간이 손쓸
수 없는 극단의 상황이기에,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기에 재난관련 작품 속에 나타난 감정과 행동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SF와 재난이라는 두
단어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 2012 속 장면들이었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
같은 류에나 어울리는 것이 SF라는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런 내 상상들은 철저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 속 상황은
우리나라가 분명하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재난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뱀처럼 온몸에 허물이
가득한 사람들... 점점 거북이 등딱지처럼 온몸이 허물로 덮여가는 사람들...
D 지역이라 일컫는
곳에서만 피부 각화증이 심해져 뱀처럼 허물을 잔뜩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 지역 풍토병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병을 앓는 사람들은 점차 D 지역으로 격리된다.
정부에서 그런 허물
인간들을 모아 허물을 벗기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해나가지만, 허물 인간들은 다시금 허물로 뒤덮이게 된다. 그나마 허물을 막기 위해서는 프로틴이라는
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 또한 가격이 만만치 않게 올라서 쉽지 않다.
누나로 불리는 소설 속
주인공은 거대 파충류 사육사다. 작은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일하던 누나는 산사태로 무너진 동물원에서 뱀을 찾지만 결국 방역대에 뱀은 사살되고,
누나는 직장을 잃는다.
한편, 누나와 김,
후리, 뾰족 수염 그리고 척은 허물을 벗기 위해 병동에 입소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롱롱(뱀)이 허물 벗는 것을 보게 되면 허물이 벗겨지고, 평생 생기지 않는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침내 그들 일행은 거대 뱀을
발견하고 포획하는데 성공한다.
과연 그들의 소원대로
거대 뱀은 그들의 허물을 말끔히 벗겨줄까?
정부는 허물을 벗겨내기
위해 많은 실험과 연구를 한다 하지만, 허물인간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또한 몇 번씩 치료
병동에 입소하고 허물을 벗고 세상으로 나가지만 또다시 병동 신세를 져야만 한다.
프로틴이라는 약물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지만, 가격이 부담스럽다.
(치료를 위해
입소하지만, 그 사실이 기록되기에 취업의 문도 막힌다ㅠ)
어쩌면 D 구역의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롱롱이 허물을 벗는 장면을 보는 것은 소원일 것이다.
하지만 롱롱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과연 롱롱도 그걸 원할까?
아니 프로틴을 공급하는
제약업체는 어떨까? 그들은 과연 모두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을 원할까?
허물인간 치료의 권위가
있다는 공박사는 어떨까? 그는 정말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각자 소원이
있다. 그 소원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만 유효하다.
그렇기에 내 소원이
타인에게 부담. 어려움.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한다.
이 소설 속 누구도 이
사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아니 소설 속 사람들만
허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그런 가면 같은 허물들을 뒤집어쓰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