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가슴의 발레리나
베로니크 셀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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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형태의 소설이었다.

그래서 처음 몇 페이지는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좀 어려웠다. 몇 장을 읽고 나서 파악이 되었지만...

화자가 여럿인 까닭이다.

주인공(여)인 바르브린과 그녀의 젖가슴 형제 (덱스트르, 시니스트르)가 바로 화자이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과 태아 시절 그리고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장면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발레가 운명이자 고양이를 모델로 발레를 연습한 턱에 걸음이 느렸던 바르브린.

그리고 그년의 젖가슴들은 교대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서두에 대놓고 언급하듯이, 가슴은 여자에게는 자신을 뽐낼 수 있는(많은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큰 가슴을 선호하기에) 여성성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발레리나에게 가슴은 좌절의 상징이다.

바르브린이 꽁꽁 싸매고 감춰도 보고, 결국 축소술까지 감행할 정도로 크나큰 핸디캡이니 말이다.

꼭 작곡가에게 청각을 의미한다는 비유까지 들 정도이니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추측이 가능하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슴 덕택에(엄마도 발레를 했지만 큰 가슴 때문에 포기한다.) 바르브린은 좌절한다.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로 말이다.

가슴은 한편으로는 아이를 먹이는 중요한 밥줄(?)이다.

발레리나로의 가슴을 필요 없는 살덩이에 지나지 않으나, 엄마로의 가슴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발레리나를 위해 포기했던 가슴이 아이에게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포기한 가슴은 다시금 엄마의 가슴 역할을 하기에는 손상이 되었다.

바로 그 두 가지의 갈림길이 선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이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이다.

처음에는 왜? 단지 가슴에 대한 이야기고 주인공이 발레리나여서?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품 속에 뭉글하게 가라앉은 여성의 이야기가 점점 진하게 등장한다.

임신에 대한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기다림 없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끝내버리는 남자의 일방적인 섹스 안에서 두 젖가슴 형제는 쏟아져들어오는 체액들을 향해  바르브린을 대신해 무자비하게 외친다.

그 결과 여자는 자신의 몸으로 그 모든 것을 받아낼 수밖에 없다.

돈이 필요해 시작한 모델 일에서조차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단지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 체크하고 기웃거리고, 그녀의 가슴 위에 슬로건만 달아놓을 뿐이다.

이 소설은 자신의 삶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바르브린을 대신해 젖가슴 형제의 입을 빌려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덕분에 늘 페미니즘 소설들이 갖고 있는 극단적 상황들이 이 소설 속에도 등장하지만 상대적으로 위화감이 덜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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