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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제목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중국 소설이라는 것도...
이야기는 용징이라는 지역에서 이백 킬로미터 떨어진 산골마을에서 시작된다. '하늘긴꼬리닭이란 산에는 약 20여 개 마을중 제일 산꼭대기 마을에 두 청년이 도착한다. 그런데 처음 바이올린을 본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대화에서 뭔가 모를 정감이 느껴졌다. '모차르트'와 '마오 주석 그리고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란 대조가 나를 소설 안으로 바짝 당겼다. 황순원의 <소나기>의 느낌도 들고 나의 어린 시절 서울의 '전차'의 이미지도 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마지막에 바느질소녀는 대도시로 떠난다. 아~~ 어찌할거나 ^^... 아무런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은소설 중에 손꼽을 정도이다. 일독을 권한다.
다이 시지에는 실제로 중국 문화대혁명 겪은 작가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았다. 이 소설은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서 그런지 스토리가 리얼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이 소설은 첫 장편소설이고 두 번째 소설 <D 콤플렉스>로 페미나상(프랑스)을 수상했다. 또한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영화화되어 2002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책은 우리를 1970년대로 나를 데려갔다. 농촌이지만 우리와 현실적으로 정치적으로 많이 다른 환경에서 나, 뤄, 바느질소녀 사이에 벌어지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정치. 중간중간에 긴박함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들었다. 두 번째 소설 <D 콤플렉스>도 리스트에 넣어둔다. 내가 자란 1960년대의 서울 모습을 상기시켜준 다이 시지에 와 번역해주신 이원희 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2019.12.29.일
🌲꽃 파는 처녀 -이 영상은 소설 중간에 나오는 북한 영화이다.
http://blog.naver.com/j_2009/80206571183
"소나타가 무엇이냐? 촌장이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중략)"나는 제목을 물었다!" 촌장이 내 눈을 쏘아보면서 고함쳤다.또다시 그의 왼쪽 눈에 맺힌 핏멍울 세 개가 내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모차르트..." 나는 망설였다. "모차르트 뭐라는 거냐?"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뤄가 대신해서 마무리를 해주었다.(p.11)
'하늘긴꼬리닭' 산골의 공주는 야들야들하면서 질긴 천으로 만든 장밋빛 신발을 신었는데, 그녀가 재봉틀 페달을 밟을 때마다 움직이는 발가락이 그 신을 통해 보였다.(중략) 하얀 나일론 양말 때문에 예쁜 발목과 발은 더욱 돋보였다.(p.32)
깊은 갱도에서 나오는 바구니가 우리에게는 바퀴 달린 의자 노릇을 해주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석탄을 잔뜩 실은 바구니를밀면서 긴 비탈길을 올라가는 중에 옆에서 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 있게 되면서부터 왠지 모르지만 내가 이 광산에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p.44)
해가 지고 물소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놓여난 '안경잡이' 가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가방에 무슨 보물을 숨겼느냐고 물었다.(중략) "내 생각엔 아무래도 그 속에 책이 들어 있는 것 같아." 뤄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p.68-69)
우리가 돌아가려고 하자, '안경잡이'가 너덜너덜하게 낡은 얇은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발자크의 소설이었다.(p.78)
"걱정이 있다구." "절름발이 패거리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니." "그럼 뤄 때문에?" 어쩌면 내가 친구와 연적 관계가 될지도모른다는 기대를 품은 채 나는 반문했다. "그것도 아냐. 난 내가 원망스러워. 하지만 너무 늦었어." 그 애는 우울하게 말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속이 자꾸 메스꺼워. 오늘 아침에도 토했어." (중략) 바느질 처녀는 두 달 전부터 월경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애는 그 일을 책임져야 할 당사자인 뤄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p.218)
거기서 나는 그 애한테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 열 페이지를 읽어주었지. <고리오 영감>보다는 감명이 덜했지만 말이야.(중략) 거북은 순식간에 사라졌어.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어. '누군가가 나를 이 산에서 나가게 해줄 날이 있을까?' 그바보 같은 생각에 난 몹시 괴로워졌어.(p.194)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중략) 궁금할까 봐 말해주는데, 저앤 이제 처녀가 됐지." 의사가 속삭였다.(p.237-238)
간소한 남성복 스타일의 재킷에 새로운 머리 모양, 평범한 운동화가 아닌 새하얀 테니스화 덕분에 그 애는 묘한 성적 매력을풍겼다. 그 우아한 맵시는 어설픈 산골 처녀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변신한 그녀를 보고 뤄는 마치 자신이 완성한 작품을 감상하는 예술가처럼 흡족해했다. 뤄는 내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넉 달 동안 책을 읽어준 보람이 있잖아." (p.245)
나의 첫 번째 외침은 그녀를 뛱 만들고, 두 번째 외침을 그녀를 더욱 멀리 떠밀었고, 세 번째 외침은 그녀를 쉬지 않고 날아가는 새로 만들었다.(중략)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뤄는 책을 불사르는 광기에 사로잡혔다. "가버렸구나" 내가 말했다. "응, 대도시로 가겠대. 그 애가 발자크 얘기를 했어." 뤄가 대꾸했다. "뭐라고 했는데?"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p.25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