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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평점 :
연애를 할 땐 몰랐던 것이 결혼을 하면 보이는 것이 있다. 생활 습관이나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남자라는 동물의 속성이다. 결혼 하기 전까지만해도 다른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을 잘 이해하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더 가까이서 남자를 관찰하다보니 정말 남자는 여자랑 참 다른 종족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하는 구조도, 대화하는 화법도, 표현하는 방식도.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고 부제가 쓰여져 있길래 이 책 <남자를 위하여>를 읽기 시작했다. 여자가 관찰한 내용인데 뭐 별거 있겠어라며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첫 꼭지도 '남자에게는 세 여자가 있다(어릴 땐 어머니, 결혼해서는 아내, 나이 들어선 딸)'는 뻔한 스토리라 그냥 읽었는데 뒤로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져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어치웠다. 나의 통념을 깨는 것들도 있었고, 이전에는 이해가 가지 않던 것들이 이 책의 관점을 통해 바라보니 비로소 이해가 가는 것들도 있었다. 남자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으나,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자들의 행동과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꽤 그럴듯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여자다움을 요구하는 만큼 스스로에게 '남자다움의 짐'을 부과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남자답다는 말 속에는 책임과 의무, 용기와 기백, 상명하복과 무리에 헌신하기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힘이 세고 싸움을 잘하고, 아프거나 슬퍼도 울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바보 같은 음담패설도 잘하고, 만능 스포츠맨이고 등등
_ 78쪽"
이 책은 '남자'라는 동물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에서부터 문학가들이 남긴 남자에 대한 문헌,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샅샅이 뒤져 주변 남자들의 증언과 함께 버무려 전달하고 있다. 실제 주변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례들을 통해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내는 것이다. 그저 한 개인이 생각하는 소회가 아닌 다양한 문헌들이 등장하다보니 읽는 재미도 있다. 곳곳에 인용되어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뺏고 뺏기는 묘한 긴장 관계 속에 놓인 아들 아버지라는 관계, 화장실 변기 앞에서조차 경쟁 관계에 놓여야 하는 남자들의 경쟁심,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생활의 안정감을 제공해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혼에 대한 남자들의 압박감, 드라마나 소설보다는 사물들에 대해 말하며 그것이 자동차에 대한 숭배로 이어지는 남자들의 사물 집착증 등에 대한 설명은 꽤 흥미로웠다. '대체 남자들은 왜 그래?'라는 나의 의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었다.
남자들은 언어나 눈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분노해야 할 때 말로 풀기보다는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질주하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분노의 양치질을 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는 말을 할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서로 술을 따라주고 마시면서 모든 감정표현을 대신하고 그것으로 모든 대화를 했다고 여긴다는 것이었다. 불알 친구가 헤어진 여자친구 때문에 힘들어 한다며 밤새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는 그들의 이별 사유 조차도 모른다던 남자들의 이야기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남자들이 읽으면 불쾌할 수도 있고, 이건 아니지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땐 상당히 남자들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남자들의 사물에 대한 집착도, 서툰 감정 표현도, 성 경험에 대한 무용담도 난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왜 그러는지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가끔은 너무나 어린 아이 같고, 가끔은 외계에 온 생물체처럼 낯선 남자.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