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빌려드립니다 - 구글 베이비에서 원톨로지스트까지, 사생활을 사고파는 아웃소싱 자본주의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류현 옮김 / 이매진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좋게 말해 참 편한 세상이 되었다. 무엇을 사거나, 무엇을 찾거나, 무엇을 해야할 때 우리는 스트레스 받아가며 그 모든 것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웨딩 플래너는 결혼식의 A부터 Z까지 원하는 것을 말만하면 그것을 찾아주는 것은 물론 예약에 애프터 서비스까지 해주고, 육아 및 양육은 베이비시터들이나 가정 교사들이 책임지고 해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순간까지도 상조회사에서 모든 일처리를 해준다. 늘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서비스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아웃소싱 서비스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며 사생활의 역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일명 '러브 코치'는 데이트에 서툰 이들을 위해 데이트 룩에서부터 데이트 코스를 짜주는 것은 물론 밀당까지 코치해주고 결혼해서 부부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부부 상담사'들이 해결책을 찾아준다. '파티 플래너'는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위해 고용되어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아주고 엄마를 대신해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받아주며,  '패밀리 컨설턴트'는 아버지에 태도를 바탕으로 점수를 매기며 최고의 아빠가 될 수 있게 도와주며 가족들과의 추억 만들기까지 도와준다.  

 

심지어는 자궁까지 빌려주는 대리모 시장까지 점점 커지고 있다. 싼 인건비와 미국의 많은 불임부부들이 만나 인도에는 벌써 대리모를 전문적으로 연결해주고 대리모를 교육시키는 시장까지 생겨났다. 미국에서 8만 달러나 드는 것이 인도에서는 단 1만 달러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인도 여성들은 자신의 자궁을 아웃소싱해 돈을 벌고, 불임부부들은 자신들의 씨앗을 빌린 자궁을 통해 키워 받아내는 것이다. 친구까지도 아웃소싱한다. 노인돌보미 서비스를 통해 노부모의 말동무가 되어줄 친구를 찾아주고, 내 친구까지도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를 서비스 받는다.  

 

아직 우리나라에서까지 범용화 된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런 서비스들이 생겨나미 일명 아웃소싱 자본주의가 커져나가고 있다. <나를 빌려 드립니다>의 저자는 이런 아웃소싱 세계에 뛰어들어 그들을 고용한 사람들과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인생의 모든 단계마다 거기에 상응하는 시장 서비스가 존재하며 그것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대가를 주고 고용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지 등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실제 그 산업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기에 사례가 굉장히 구체적이고 생생해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아웃소싱 자본주의가 얼마나 커졌고, 그것을 움직이는 자본 단위가 얼마나 큰지 쉽게 실감할 수 있다. 또 읽다보면 '뭘 이런 것까지 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편리하게 되어있는지 시스템화 된 서비스 산업을 보고 있노라면 '편하긴 하겠네'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것들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아침 식탁에서 부터 인간관계, 침실까지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아주 심플하게 선을 그으며 도우미를 쓰기도하고 돈을 받고 일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현실과 이것까지 그래야 하나라는 고민 사이에서 갈등하고, 대신 일을 해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한 인터뷰이는 너무 바쁜 일상 때문에 생일 선물을 보내주는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담을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카드 결제로 선물을 한 꼴이 됐습니다. 제가 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더군요. 속은 듯한,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얼른 결제하고 제 일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선물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정말 슬펐습니다.(211쪽)" 무언가를 준비하고, 찾아보고, 결정해서 경험을 하는 소소한 즐거움까지 빼앗겨 버린 그의 독백은 많은 것들을 남에게 떠넘겨버리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 새겨들을만 한 말이다.  

 

이런 서비스들을 굳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만,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사생활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받아야 할 '힐링'까지 자본주의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간 지금, 사생활의 상품화는 어쩌면 가족의 붕괴를 촉진하며 사람들의 비인간화를 가속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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