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비잠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0월
평점 :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고 반해 전작주의자를 자처하게 된 최제훈의 신작 <나비잠>을 읽었다. 소설을 읽더라도 대략적인 스토리와 최소한 소제 정도는 찾아보고 선택하는데, <나비잠>은 유난히 책에 대한 설명이 없었고(책 자체에도 책에 대한 설명은 없다), 게다가 책 제목도 표지 그림도 정확히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저 최제훈이 썼다는 사실과 뒷 표지에 쓰여 있는 "흥분하지 마세요. 이제 시작인데요"라는 흥미로운 문구에 이끌여 책을 사기로 결심했고 지난 주말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소설은 현실과 꿈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현실 세계의 주인공은 매력적인 아내와 아들을 둔, 잘 나가는 대형 로펌 회사에 다니는 변호사 최요섭이고, 꿈에서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인지 감옥게 갇혔다 탈출해 경찰에 쫓기고 있는 전 변호사 최요섭이다. 현실 세계의 최요섭은 경쟁이 난무한 현실에서 서서히 몰락해 가고, 꿈 속에서의 최요섭은 판타지 세계를 경험하며 과거 기억 속 누군가를 계속해 찾아간다. 현실과 꿈은 분리된 것이 아닌 교묘하게 연결되고 기억과 경험들이 서로의 세계를 오고가며 등장한다.
현실세계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냉혹하다. 로펌에서는 정의고 뭐고 수임료와 승소, 뺐고 뺏기는 사건들이 그야말로 양육강식 전쟁터이고, 아들을 위해서는 야구 감독에게 뒷돈까지 건네며 스카우트를 추진하고, 부부관계는 자신은 퇴폐업소를, 부인은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며 나락으로 빠져든다. 평온하던 삶이 핀 하나가 나가자 줄줄이 무너지며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몰락하고 자신은 무기력하게 그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꿈 속에서 작은 도발들로 연결되며 발버둥친다. 탈옥을 감행한다든지, 인질을 잡아 경찰에게서 도망친다든지, 반복되는 꿈을 멈추기 위해 도끼로 사람을 내려친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꿈도 여전히 지루하고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꿈도 현실도 모든 것이 숨을 조여온다.
이번 책은 이전 작품들 보다 훨씬 판타지가 강해진 느낌이다. 퀴르발보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고양이보다 나비잠이 더 그렇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번 책은 큰 감동이 없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수많은 상징들이 메시지를 모호하게 만들고, 추상적인 묘사와 스토리들이 공감대를 떨어뜨려 주제만큼 책도 무겁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 책은 최제훈의 팬이 아니라면 크게 공감할 수 없는, 대중들을 만나기엔 한계를 가진 책이 될 것 같다. 자신만의 세계가 아닌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는 날을 기다려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