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 뉴스검색을 하던 중 「400년 전 오늘, 영국의 보물 셰익스피어 잠들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세르반데스와 같은 해, 같은 날 사망했다고 전하며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는 기사이다. (누가 이 날을 이리 정했냐하면 바로 유네스코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이지 말입니다. 책을 빙자해 저.작.권.에 방점을 둔 말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죄측의 책은 읽어서 상품 넣기를 한 것이 아니라, 허전해서 넣은 것 입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를 나라와 어쩌구 한 발언들에 빈정도 상했고요.

 

기사를 읽다보니 왠지 빈정 팍- 상해버린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을 폄하하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긴 18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시작한 그가 정말 그 많은 작품을 그것도 그 정도의 수준으로 과연 쓸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심을 전문가들로부터 받고는 있지만 이는 다만 심증일 뿐 물적 증거가 제대로 없는 형편이기는 하다.

 

400년 전, 그러니까 1616년 4월 23일, 그가 사망했다고 한다. 기사는 더불어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와 당대 비평가 칼라일의 발언을 함께 실었는데 바로 이것이 나의 빈정을 제대로 상하게 해버린 것이다. (셰익스피어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일인이다)

 

기사에 의하면, 여왕 엘리자베스는 “나라는 내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내줄 수 없다.” 라고 했으며 칼라일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한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본 말이기는 하다. 츠암내~ 내 입장이라면 영국에다가 셰익스피어를 얹어주어도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 이것이 이 글의 방점이다. (권한이 없기는 엘리자베스나 나나 매 한가지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 말입니다)

 

하기야 셰익스피어가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하기는 유명한 인물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와 같은 시골 상 무지렁이도 중학교 때 이미 완역본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지 않았던가. 이는 당시 우리집이 책을 살 형편이 있었다거나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친척이 당시 책장사를 하는 바람에 인지상정 우리 집에서 구입해준 덕분이다. 당숙께서는 그 시골 깡촌의 상 깡촌인 우리 집에 자주 들르셨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께 들어본 적이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물론「데카메론」, 「죄와 벌」 기타 등등 상 깡촌 치고는 적잖은 책들을 우르르 몰고 오셨다. 한마디로 영업을 하러 오신 것이었다. 나는 물론 내 수준에 맞는 책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무작정 읽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 중학교 때 셰익스피어를 읽었소! 가 아니라 그 작가가 물을 건너도 한참 건너고 산을 넘어도 한참을 넘어야하는 대한민국의 까마득한 시골 강촌에 나타날 만큼 유명 인사였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중학생이 읽었다고는 하나 결과는 읽으나 마나인 수준이었을 테니 하는 말이다. 스토리나 알지 그 내면을 어찌 중학생인 내가 통찰하여 알아 먹을 수 있었으랴...

 

나이가 더 들어 상경을 하니 교수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야말로 허걱~ 이었다. 셰익스피어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자들이 100명도 더 넘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입은 쩌억~ 벌어지면서, 와우~~! 했던 것이다. 없던 한글을 새로 맹근 세종대왕 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란 말이던가?? 했다. 지금은 세월이 더 흘렀으니 셰익스피어 관련 박사 학위 소지지가 200명쯤 될까?

 

 

돈키호테는 정말 마음 다잡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 순위에서 계속 밀리고는 있지만 그 진가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다. 철모르던 그 어린 시절의 시각이 아닌, 그보다는 좀더 성숙한 시각으로 말이다. 출판업자들의 상술 덕분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지 할 기회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잃어버렸다. 그런 책이 하나 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고전을 고전 답에 읽어야 하거늘, 상술은 귀한 고전들을 어린 시절 잠시 거쳐가는 책으로 전락 시켜버렸다. 이 출판을, 고전을 고전답게 음미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각설하고, 아무리 자기가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이라고는 하나, 나라가 뭐 자기껀가 내어주고 말고하게? (물론 당시는 나라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자신의 입과 혀가 되어준 인물이 셰익스피어라고는 하나, 나라를 내어줄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내줄 수 없다니... 기사를 읽는 이 독자 아침부터 빈정 상한다.

 

사실 이 겁도 없는 두 냥반의 발언은 잘 새겨들어야 하는 말들이다. 다들 알다시피 당시 영국은 전 세계 곳곳을 자기네 나라로 삼고 싶어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무서울 게 없고 잘 나가던 시절이었으니, 나라 하나쯤은 잃어도 상없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 발언 말이다.

 

알고 보면 나라를 선뜻 내어주곤 하던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땅이 하도 넓다보니 패왕은 제후국을 다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비행기나 KTX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주왕(周王)은 상(商)나라를 꿀꺽한 후, 일등공신이었던 강상(姜尙)을 내칠 요량으로 멀 찌기에 있는 제(齊)나라를 떼어주고 제후국으로 삼았다. 이는 400년 전이 아니라 4,000년도 더 넘은 이야기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나라를 떼어주던 중국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2,000여 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도 한고조는 일등 공신이었던 한신에게 초나라를 떼어주고 초왕으로 봉했다. 물론 한신은 한고조의 심기를 건드려 끝내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기면서 죽음을 당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라를 떼어주던 일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 중국이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의 시대는 전 세계가 마치 자신의 통치하에 있다고 여기며 기고만장 하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발언은 식민지 하나쯤은 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내놓겠다는 뜻으로 한 말인 것이다. 이 얼마나 발칙하고도 무례한 발언이던가.

 

칼라일의 발언 역시 지극히 도발적이고 싸가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싹수라고는 도대체가 없는 발언이기는 마찬가지다. 인도인이 이 말을 듣는다면? 칼라일의 발언은 어쩌면 인.도.가 조.선.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시절이었다.이 두 냥반들이 무기탄하게 뱉어낸 발언은 인도를 완전 무시한 발언이기도 하거니와 알고 보면 인도가 조선이 되었을 수도 있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본디 싹수가 노란 사람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발언을 그대로 옮겨 쓴 기자 냥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단 말인가? 셰익스피어의 유명세를 빌려 책의 날을 강조하다보니 아차 실수를 저지른 기사로 보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기 전에 남들보다 생각을 한 번 더 해 본 후에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기자 냥반이 아니던가?

 

그럼 그 많던 식민지 중에 왜 하필 인도였을까. 인도는 땅도 겁나 넓고 인구도 겁나 많아 영국의 입장에서 생산성으로 치면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는 나라였다. 17세기 당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인도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던 시기였다. 영국이 막상 인도를 차지하고 보니 인도인들이 선뜻 자신들의 뜻에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인도 회사를 설립, 전 세계를 수탈하는 전초기지로 인도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인도를 결코 무력으로 구속할 수가 없었다. 하여 나는 칼라일이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어쩌구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인 것은, 인도는 결코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개탄하는 소리로 들리는 이유이다.

 

인도는 공자가 자로의 질문에 답하며 가르친 남방지강(南方之强)의 대표적인 나라이다. 무력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날로 먹을 수 없는 그 남방지강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칼라일의 발언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신 포도를 바라보는 아쉬운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 바로, 셰익스피어와 인도 어쩌구 라는 말이다, 이 기자 냥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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