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 박, 은 (潘南 朴, 訔 )
朴訔(박은)은 박상충의 아들로
고려말 음서로 관직에 올랐고 후에 급제하였다.
조선 개국 당시 정도전이 실권을 잡자
외삼촌인 이색이 힘을 잃으며 자연스럽게 지방 한직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두차례 있었던 왕자의 난에 가담하여 태종의 신임을 얻었고,
중앙에 진출, 대사헌, 병조등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으며 1422년 사망한다.
요즘 본관을 따지는 일은 아주 고리타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형적인 꼰대의 기질을 발휘하는 일인지라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일이다.
세상이 어느 때인데 본관을 따지고드냐 이거다.
꼭 변변치 못한 혈통을 가진 자들이 본관을 따지고 조상을 운운하거늘,
내가 그짝이 되고 말았다.
물론 지극히 옳은 말이면서도
할 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이고, 강아지도 혈통을 따지던데?
(강아지의 혈통을 따져서가 아니라 반남 박씨가 좋다는 뜻이다.)
어째거나 나는
사적으로 좋아하는 몇몇 본관이 있으니
바로 덕수 이씨가 첫째요
반남 박씨가 둘째이고
달성 서씨가 셋째이다.
차별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왠지 마음이 더 가는 분들이라는 얘기다.
덕수 이씨에게는 마음으로 진 빚이 있다.
바로 이율곡과 이순신이 그 두분께 말이다.
율곡은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던 관료요 학자였고,
순신은 다들 아시다시피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있던 나라를 구했다.
참으로 고맙게 여기고 있는 이유이다.
달성 서씨는 유대장군이 주는 깊은 인상 때문이다.
장군께서는 자신에게는 엄격했고 절의가 있었으며
부하들에게는 너그러웠다.
하여 그의 별명은 덕장(德將)이다.
부하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장군은 요즘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조선시대에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위와 권력으로 갑질이나 할줄 알았지
현대에도 사람 귀한줄은 모르는 시대가 아니던가.
하물며 조선시대임에랴...조선은 사람을 물건 취급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서유대장군은 달랐다.
백성이자 부하였던 하급 병졸들을 그는 따듯하게 대했다.
달성 서씨에 마음이 가는 이유이다.
반남 박씨는 대대로 절의의 대명사였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았으며
소신과 절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 태보이다.
영원히 가슴에 남아 있을 이름이다.
박은은 관직에 있을 때, 결코 갑질하지 않은 인물이다.
죄인을 처벌하라는 명을 받고 박은은 죄인을 조사했으나 혐의가 없었다.
박은은 무죄를 주장했다.
이를 계기로 집정에게 미움을 사 좌천되었다.
좌의정 하륜이 치부하며 잘못을 저지르자 대사헌 박은은 이를 통렬히 비판했다.
탐욕스러웠던 하륜과는 달리 박은은 청빈하고 검소했다.
태종은 세종의 처가인 외척을 숙청하고 싶어했다.
차기 왕이 외척에 휘둘리면 국정을 살피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잘 알고있었던 것이다.
이에 동조한 박은은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제거하는데 일조한다.
심온은 억울했을 것이다.
심온은 죽으면서 후손들에게 뼈저린 유언을 남겼다.
청송 심씨는 절대로 반남박가와는 혼인하지 말라!!!!!, 라고 말이다.
반남 박에게 불편한 심기를 가진 청송 심씨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반남 박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청송심씨에게 아무런 사심도 없다.
또한 나는 박씨도 이씨도 서씨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