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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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 얘기하자면, 프랑스 파리에 일종의 망명을 온 시모니니란 이탈리아인이 정보기관의 '끄나풀'로 일하며 음모를 꾸미고 음모를 팔아먹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난 시모니니는 기억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에 대해 회상하는 일기를 쓰며 기억을 되찾으려 한다. 일기를 통해 그의 과거가 밝혀지는데, 에코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당시 시대상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나온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근대인 19세기 중반이며, 통일 전쟁을 겪는 이탈리아, 혁명 이후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한 프랑스에 대한 얘기가 주요 기반이다.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음모론인데, 음모론이 어떤 이유로 생겨나 퍼져나가는지에 대한 에코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책 속 몇 구절:

   내[시모니니] 생각을 부연하자면 이러하다. 뒤마의 이야기에서 천둥산이며 라인 강 좌안이며 그 시대와 관련된 것들은 빼버리고, 음모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오는 대목을 취한다. 그들은 각 나라에 촉수를 뻗고 있는 비밀 집단의 대표들이다. 그들이 모이는 곳은 적당히 어둡기만 하다면 숲 속의 빈터도 좋고 동굴이나 고성이나 공동묘지나 지하 납골당이라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연설을 하는 것이다. 음모와 세계 정복의 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연설....... 내가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는 비밀에 싸인 어떤 원수의 음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유대인들이 그런 음모를 꾸미는 원수였고, 예수회 신부들에게는 프리메이슨이, 가리발디파인 아버지에게는 예수회가, 유럽의 절반쯤 되는 나라들의 군주들에게는 카르보나리가, 마치니파인 내 동학들에게는 사제들의 조종을 받는 국왕이, 세상 절반의 경찰들에게는 바이에른의 일루미나티가 그런 적들이었다. 어떤 음모 때문에 자기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상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누가 알겠는가. 뒤마는 하나의 서식을 만들어 낸 셈이다.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서식을 작성하며, 자기 나름의 음모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 인간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열망한다. 불행한 사람, 운명의 여신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갈망도 크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열망하는가? 돈을 열망하고, 누구나 그 유혹에 빠지기 쉬운 권력(남에게 명령을 내리고 남을 모욕하는 쾌감)을 열망하며, 자기가 겪은 부당한 일(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부당한 일을 겪게 마련이다)에 대한 복수를 열망한다. 뒤마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우리에게 초인적인 권력을 줄 수 있을 만큼 막대한 부를 획득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원수들 하나하나에게 어떤 식으로 앙갚음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왜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는가(그렇게 엄청난 행운은 고사하고 그저 소박한 바람이라도 이룰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왜 나는 그마저도 얻지 못하는가)?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도 내리는 복이 왜 나한테는 오지 않는가? 사람이 불행한 것은 그 자신이 무능한 탓일 수도 있으련만, 아무도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을 불행하게 만든 죄인을 찾으내려고 한다. 뒤마는 욕구 불만에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에게) 그들의 실패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천둥산 꼭대기에서 열린 모임에서 어떤 무리가 그대의 몰락을 계획했다는 식으로....... (144~146 페이지) 


그리고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음모론을 이용한다. 우리 주변에 무슨 음모론이 지금도 횡횡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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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Reborn> 국역본을 조금씩 읽고 있다.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스몰린의 주장을 다시금 곱씹어보고 싶어서다. 읽으면서, 저자의 실제 의도에서 조금씩 어긋나게 번역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이어서 원문을 찾아봤다. 


먼저 자연의 단순성에 대한 부분이다. 뉴튼은 그의 운동법칙에 만유인력 법칙을 더해 지구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을 설명해버렸다. 즉, '천상계와 지상계를 통일해 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다음처럼 말하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처럼 단순한 수학적 관계가 자연의 보편적인 현상을 포착한다는 사실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놀라운 귀결이었다.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 사실상 고대인은 운동의 원인에 그처럼 단순하고 보편적인 수학을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72~73 페이지)


여기서 내가 의아했던 부분은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이다. 왜 자연은 단순하면 안 되나? 우리가 자연에 대해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나? 원문을 찾아보고 저자의 원래 의도와의 차이를 알게 됐다. 다음은 위의 부분에 대한 원문:


"The astounding consequence for our conception of nature is that such a simple mathematical relation captures a universal phenomenon in nature. Nature did not have to be so amazingly simple--and, indeed, the ancients had never contemplated such a simple and universal application of mathematics to the causes of motion." (p. 23)


원문을 보면 첫 번째 문장부터 오역의 혐의가 있다. 저자가 원래 의미하는 바를 직역하면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가져온 놀라운 귀결은 그렇게 간단한 수학적 관계가 자연의 보편적 현상을 포착한다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 역자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라고, 마치 우리가 자연에 대한 특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번역했지만, 저자는 그렇게 의도한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문장의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의 원문은 "Nature did not have to be so amazingly simple"이다. 이 의미는 "자연은 그렇게 놀라울 정도로 단순할 필요가 없었다"이다. 역자는 자연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야 한다는 개념을 마치 우리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번역했지만, '단순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꼭 단순할 필요는 없다'이다. 굳이 단순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단순하다고 판명되니 놀라운 것이다. 


그 다음 애매한 곳은 운동의 기술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다. 


"힘이 어떻게 운동을 일으키는지 물으려면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73 페이지)


위 문장을 보면,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야만 한다"가 힘이 어떻게 운동을 야기시키는지를 묻기 위한 전제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제가 맞나? 다음은 원문이다:


"To ask how a force causes motion, you have to think of a moving object tracing a curve in space." (p. 23) 


저자가 의미하는 바는 번역과는 살짝 다르다. 초점이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운동'을 생각하려면 그냥 '운동하는 물체'를 상정해야 한다는 단순한 의미이다. 즉, "힘이 어떻게 운동을 일으키는지 물으려면" 공간에서 '어떤'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물체'를 생각해야 한다, 는 뜻이다. 


곧 연휴이고, 시간이 좀 생겨서 (안 올려도 좋을) 글을 주절주절 올리게 됐다. 이러다 다시 바빠지면 한 달에 한 번 글 올리기도 힘들어질 듯 싶다.


모두 명절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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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War II at Sea: A Global History (Hardcover)
Craig L. Symonds / Oxford University Press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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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전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살펴본 책이다. 대서양에서 벌어진 유보트와의 싸움(대서양 전투)부터 태평양에서 벌어진 여러 해전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해전의 측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살펴보니 전쟁의 전모가 더 잘 보이는 듯하다. 해전을 따라가지만 같은 시기의 주요 지상전도 짚어주며, 태평양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유럽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의 기술도 많다. 해전 및 지상전의 흐름과 의의를 알려주며, 특히 전쟁 수행에 있어서 해상 운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분 좋게 읽으며, 마지막 에필로그에 다다랐는데, 갑자기 정신이 확 드는 부분이 나왔다. 1945년 9월 2일, 미 해군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연합국 대표와 일본 대표 사이에 항복 조인식 장면을 기술하는 부분이었다. 일본 대표로는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대신이 나왔는데, “한국에서 테러리스트 폭탄”에 의해 다리를 잃어 절뚝거리게 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시게미쓰가 다리를 잃은 사건은 상하이에서 일어났고, 폭탄을 던진 “테러리스트”는 윤봉길 의사이다.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저자의 책임이겠지만, 한편 서구가 우리에게 얼마나 무심한지,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주변부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열강의 하나로 취급받았지만, 우리는 양차 세계대전에서 국가로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식민지였을 뿐이다. 그런 나라가 이제는 ‘선진국’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제,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KF-21이 첫 초음속 비행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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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s he had lost a leg years before in Korea to a terrorist’s bomb...” (p.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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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간적 법칙으로 세상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리 스몰린의 한 마디를 옮긴다.


There's a cheapness at the core of any claim that our universe is ultimately explained by another, more perfect world standing apart from everything we perceive. (p.11)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동떨어진, 또 하나의 더 완벽한 세상에 의해 우리 우주가 궁극적으로 설명된다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싸구려이다."


예전보다는 위와 같은 주장이 덜 급진적으로 들리며, 심지어 동의가 되기도 한다. 시간 속에서 사는 존재인 우리. '시간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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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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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다듬어 출간한 책이라 좀 산만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지구과학적, 대기과학적, 기후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매우 유익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위기는 예전보다 큰 변동을 보이는 기후 등으로 인해 우리가 생활에서 실감하는 바이지만, 과연 우리는 더 잘 살겠다는 욕망을 버리고 산업혁명 이래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할 수 있을까. 기후 변화가 야기하는 전세계적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기후 변화는 정의(justice)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과 피해를 보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 미증유의 위기를 막기 위해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책 속 몇 구절:

   인류가 지금 생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류 전체가 풍족하게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왜 생산을 더 증가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더 사용하고 기후변화를 더 일으켜야 하는가? 이제 우리 사회가 지향해 온 가치를 다시 점검해야만 한다. 발전만을 추구하는 과소비 체계를 바꾸는 선택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선택할 여지도 없이 시련을 겪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더 크게 더 빨리 발전하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함께 성찰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그 심각성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통해 현재의 생활 방식과 산업 구조를 바꿔내는 사회 변혁으로 해결해야 한다. (222~223 페이지)

   1.5도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30년까지 2010년 수준에서 45퍼센트 줄여야 하며, 2050년에는 순 제로net zero에 도달해야 한다. 순 제로는 특정한 기간에 이산화탄소의 인위적 배출량이 인위적 흡수량과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석탄 발전을 거의 중단해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1차 에너지 공급의 50~65퍼센트, 전기 사용량의 70~85퍼센트를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50년에 2010년 수준의 75~90퍼센트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 이것은 석기시대가 돌이 모자라서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화석연료가 있어도 쓰지 않는 새로운 시대로 가야 함을 의미한다. (128 페이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있으며, 10년 전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나 구호만 요란할 뿐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나라다.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 목표는 의도만 표했을 뿐, 실제 해야 하는 일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부는 우리가 거부감을 느낄 만한 힘든 일을 하지 않았다. (13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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